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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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 선호도 조사 1위 이낙연, 대선판까지 이어질까

이낙연 당내 기반 약해… 8·29 전대 도전
본격 검증 무대 올라 여권내 경쟁 관건
친문 결집 관측… 다자구도 경선 가능성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24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글로벌신재생에너지연구센터 쉼팡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일반국민의 지지는 후보의 결점이 알려졌을 때 쉽게 빠져나가고, 정치조직이 미는 후보는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국민 지지와 조직을 함께 갖춰야 강력한 대세론을 탄다.”

정치 관련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세론’의 조건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세론에 올라탄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했지만 청와대 집무실까지 걸어 들어간 승자는 한 손가락에 꼽힌다. 1997년,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후보로 나섰던 이회창 전 총재는 대세론의 형성과 몰락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2007년, 2012년 대선은 각각 대세로 평가됐던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이변 없이 승리를 거머쥔 선거로 기록됐다. 성공과 실패가 혼재된 대세론의 정치학이다.

2022년 대선을 2년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는 이낙연 대세론이 형성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한동안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독주했다. 하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거법 위반 판결에서 벗어나자마자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당 주류인 ‘친문(친문재인)’ 의원 다수는 관망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낙연 대세론’은 8·29 전당대회에 한해 들어맞는 말이고 대선판까지 대세론이 형성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로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차기 주자로 떠올랐지만 당의 주류인 친노·친문과는 걸어온 궤적이 달라 상대적으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적 지지도는 높지만 그를 감싸줄 단단한 조직이 아직 없는 점이 보완점으로 꼽힌다. 이 의원의 전대 출마는 대세론을 굳히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가 2002년 11월 경북 경산의 추곡 수매현장을 방문해 농민의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낙연, 이회창·이인제 실패 넘어설까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변이 없는 한 다음 대통령은 이회창”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변은 있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소수파인 김대중 후보가 충청 맹주인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손잡는 절묘한 연대가 현실화했다.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내각제’를 고리로 뭉쳤다. 공고하던 이회창 대세론은 무너졌다. 2002년 대선 국면에서 이회창은 여야 통틀어 1위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대세론에 다시 불을 붙였지만, 그해 대선 레이스 초반 지지율 2∼3%대에 불과했던 군소 후보 노무현에게 역전패 당했다. 노무현은 이회창을 꺾기 전에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대선 후보 경선에서 2000년부터 대세론을 타고 있던 당내 유력 주자 이인제를 무너뜨리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인제는 ‘안방 대세론’이었다. 민주당 주자 중에는 1위였지만 이회창 후보와의 일대일 대결에서는 매번 밀렸다. 노무현은 이회창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온 여론조사 이후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른바 ‘노풍’(노무현 바람)을 불러일으킨 노 후보는 민주당 주자로 확정된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며 후보 교체론이 나올 정도로 흔들렸지만 대선을 직전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며 간발의 차이(2.3%포인트)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전문가들은 이인제, 이회창과 이낙연이 처한 정치적 환경은 다르다고 진단한다.

이낙연은 이인제와 달리 당내 세력보다는 일반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상황이다.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호남계는 지역감정을 우려하며 영남권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했지만 이제는 (호남 후보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용인하기보다는 (호남필패론에) 반발하며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이 의원의 높은 지지율에 고무돼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는 호남계 유권자가 많다는 것이다. 다만 아들의 병역 의혹 등 돌발 변수로 무너진 이회창의 사례에서 보듯, 이낙연 앞에는 여러 관문의 검증의 시험대가 남아있다.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노무현(오른쪽), 이인제 후보가 2002년 4월 민주당 대구 선거인대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낙연 대세론 좌우할 친문 그룹의 향배

그 첫 번째 관문이 이번 당권 레이스다. 이낙연과 김부겸 전 의원의 맞대결로 진행되던 당권 경쟁은 40대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발탁한 친문 인사인 박주민 의원이 등판하면서 3파전 양상이 됐다. 관전 포인트는 그간 관망세였던 친문 그룹의 향배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는 “이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의 양자구도로 전당대회를 치르면 친문 중에 현재 당 지도부에 속한 당권파 친문이 움직일 여지가 없는데 박 의원이 출마하면서 그들의 입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과 관련해서도 이 의원과 이재명 지사 외에 다른 경쟁자를 키워 경쟁구도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도 다자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법적 굴레를 벗게 되면 친문 세력은 김 지사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낙연 비토론’을 이야기하거나 관망하는 의원 일부는 통일부 장관 후보자인 이인영 의원과 9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이광재 의원까지 잠재적 대선 후보로 거론한다. 새 후보를 찾기 위한 암중모색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지난 1월 당에 복귀한 뒤 이개호·오영훈 의원을 비롯해 옛 동교동계(설훈·김한정)와 옛 손학규계(전혜숙·고용진·김병욱·정춘숙), 박광온·노웅래 등 언론계 출신의 지원을 받으며 세를 넓혀가고 있다. 영남권에서도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대구·경북(TK)을, 친문 최인호 의원이 부산·울산·경남(PK)에서 이 의원 지지세를 모으고 있다. 청와대 출신 친문 일부도 뒤에서 이 의원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상황이다.

김관옥 계명대 교수는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 의원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인데 경쟁 과정에서 얼마나 자기 그림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철 교수는 “이 의원이 대표가 되더라도 견제 받는 대표가 되면 힘을 못 쓸 것”이라며 “(당 대표가 된다면) 전대 이후에 당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미·곽은산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