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자 측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를 공식 요청하면서 박 전 시장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가능할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권위가 직권조사 개시 여부를 논의 중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2년 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사건에서 지지부진했던 인권위의 직권조사에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29일 인권위 등에 따르면 특정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인권위가 직권조사한 대표 선례로는 2018년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례가 있다. 당시 인권위는 안 전 국장의 성추행과 인사보복 의혹에 더해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전반까지 직권조사하겠다고 발표해놓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5개월 만에 조사를 종결한 바 있다. 인권위는 해당 조사에서 검찰 내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피해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체 규명을 하지 못했다.
당시 검찰 대상 직권조사에서 인권위는 관계인 진술 등을 토대로 검찰 내에서 성희롱·성추행이 발생했다고 의심되지만 징계나 입건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 9건을 추가로 파악하고, 이 가운데 검찰의 후속 조치가 없는 4건에 대해 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피해를 부인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개별사건의 조사를 더 진행하기 어려웠다”며 조사 중단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강제수사권이 없는 인권위가 이번에 박 전 시장 의혹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결정하더라도 앞선 사례에서처럼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권위에 압수수색 등의 수단을 포함한 강제수사권이 없는 이상 자발적 진술이나 임의제출 성격의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사건 관계인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진상규명이 쉽지 않은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앞서 피해자 측은 전날 인권위에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제출했다. 인권위는 30일 오전 개최되는 상임위원회에서 ‘직권조사 의결의 건’에 대한 논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