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故 박원순 성추행 진상규명 ‘인권위’가… “강제성 없다” 한계도

압수수색 등 수사권 없어 필요한 자료 적시 확보 어려울 듯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의실에서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의 방조, 묵인 의혹 등을 직권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피해자 측은 인권위에 성추행 피해가 발생한 상황, 업무 환경, 묵살 과정 등 조사를 요구했으나 수사기관과 달리 ‘강제수사권’이 없는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

 

인권위는 30일 오전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열어 박 전 시장 관련 의혹에 대한 ‘직권조사 계획안’ 안건을 비공개 심의해 의결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최영애 인권위원장을 비롯해 여당 측 상임위원인 정문자 위원, 야당 측 상임위원인 이상철 위원, 대통령이 지명한 박찬운 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 위원 4명 중 3명 이상이 찬성해야 안건이 의결되는데 이번엔 만장일치로 의결이 이뤄졌다. 인권위는 별도의 직권조사팀을 구성해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정은 지난 28일 피해자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피해자 측을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인권위에 피해자가 진정하는 형식이 아닌 직권조사 형태의 조사를 요청했다. 피해자가 진정하는 형태의 조사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범위 내 조사가 이뤄지지만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하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서울시 및 공공기관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피해자 측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입증할 증거 자료와 수백 페이지 분량의 직권조사 요청서를 만들어 인권위에 전달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는 “(피해사실 등을 담은) 증거 자료만 30개”라고 설명했다.

 

앞서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와 박 전 시장의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캡처화면 등을 공개한 바 있다. 직권조사 요청서에는 피해사실 뿐 아니라 2차 가해에 대한 국가, 지자체의 적극적인 조치와 공공기관장 비서 채용과정의 성차별 요소, 선출직 공무원의 성범죄 견제장치 등 제도 개선 요구들이 담겼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인권위 직권조사 촉구 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인권위 조사의 한계도 지적된다. 수사기관과 달리 인권위는 강제수사권이 없어 수사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거나 대상자가 조사에 응하지 않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판단보다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개선사항 등을 담은 관련 보고서를 내 관계기관에 ‘권고’하더라도 강제성이 없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인권위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일정한 의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조사를 해서 유의미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며 “강제성이 있는 것은 수사밖에 없는데 피고소인 사망으로 방법이 없어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