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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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돈 안 내서 주독미군 감축”… 주한미군 ‘변화’ 촉각

더 거세진 ‘방위비 협상’ 압박

美국무부 “수용 가능한 합의 전념”

韓도 방위비 대폭 증액 압박 직면

軍 안팎 “단기간에 현실화 어려워”

 

미국이 29일(현지시간) 주독미군 감축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한미군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될지 주목된다. 미 국방부는 주독미군 병력 가운데 1만2000명을 줄여 미국 본토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 다른 동맹국으로 재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3만6000명인 주독미군의 3분의 1 정도가 감축되는 셈이다. 한국 국방부는 주한미군 조정 등과 관련해 한·미 양국 간 논의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주독미군 감축을 세계 안보전략 변화에 따라 미군을 재배치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돈을 안 내서 병력을 감축하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부자나라는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미군 재배치’라는 명분과 결합한 모양새다.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압박에 직면한 한국도 독일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미 국무부도 이날 “미국은 한국과 상호 수용가능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전념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오랜 관점은 한국이 공정한 분담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방위비 인상을 거듭 압박했다. 제임스 드하트 미측 방위비 협상대표가 이날 북극권 조정관으로 자리를 옮긴 데 대한 질문에도 국무부는 “방위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한미군 감축이 단기간 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군 안팎의 관측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고, 섣부른 감축은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에 부정적인 미국 정치권 내 기류도 영향을 미친다.

다만 미 국방부가 한국이 속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재배치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주한미군 기능이나 구성 등이 변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관련해 주목되는 개념이 ‘전략적 유연성’이다. 2000년대 미군 재배치 과정에서 등장한 전략적 유연성이 현재 시점에서 현실화되면 유사시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의 분쟁지역으로 파견할 수 있게 된다. 군 소식통은 “미국은 지금처럼 ‘붙박이’ 군대를 많이 유지할 여력이 없다”며 “필요한 곳에 병력을 수시로 파견하는 순환배치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주한미군 지상전력이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미 육군대학원 산하 전략연구원(SSI)은 이달 중순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실전배치를 계속하겠지만 재래식 전력은 위축될 것”이라며 “한국군의 전시작전권 인수와 군 현대화 추세를 고려할 때 유사시 대규모 지상전에 대비한 주한미군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상군 위주인 주한미군이 북한 미사일 방어나 대량살상무기 대응 전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기존의 주한 미 육군 전력은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에 순환배치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과거 미국은 2000년대 이후 이라크·아프간 전쟁 과정에서 주한 미육군 AH-64 공격헬기 대대를 차출하고 미 공군 F-16이나 A-10 전투기 부대를 한반도에 순환배치한 전례가 있다.

한국 국방부는 주독미군 감축 발표와 관련해 주한미군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홍식 부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주한미군 규모 조정 등과 관련해 한·미 양국 간 논의된 바는 없다”며 “한·미 양국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확고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