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관이 뉴질랜드 근무 당시 현지 남자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뉴질랜드 총리와 외교부가 모두 한국 정부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의혹이 정상 간 통화에서까지 언급되면서 ‘국제적 망신’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한국 외교부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협조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30일(현지시간) 뉴질랜드 온라인 매체 스터프에 따르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대변인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 간 통화에서 해당 의혹을 언급했던 것과 관련해 “총리는 한국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특권면제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점에 실망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대변인은 이어 “이제 한국 정부가 다음 조치를 결정할 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상 간 통화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관계부처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처리할 것’이라고 답한 것이 전부”라고 밝힌 바 있다.
뉴질랜드 외교부는 이날 연합뉴스의 이메일 질의에 보낸 답변에서 “뉴질랜드 정부는 한국 정부가 뉴질랜드 경찰의 앞선 요청에 협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을 표현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뉴질랜드 외교부는 또 “뉴질랜드의 입장은 모든 외교관이 주재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라며 “이 사안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의혹은 2017년 말 한국 외교관 A씨가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뉴질랜드 국적 남성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으로, 뉴질랜드 경찰이 수사 중이다. 지난 25일 뉴질랜드 매체인 뉴스허브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A씨는 2018년 2월 뉴질랜드를 떠나 한 아시아 국가의 한국 대사관에서 총영사로 근무 중이다.
뉴질랜드 사법당국은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한국 정부에 주뉴질랜드 대사관의 폐쇄회로(CC)TV 영상 제공과 현장 조사 등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부는 자체 감사를 통해 이 사안을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A씨는 외교부 조사 과정에서 “성추행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고, 그에게 경징계에 해당하는 ‘1개월 감봉’ 조처가 내려진 점으로 미뤄 볼 때 외교부가 A씨의 입장을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외교부는 협조 방안을 찾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뉴질랜드 측과 협조할 용의는 과거부터 표시해왔고, 그 다음에 가능한 방안을 같이 찾아서 수사가 이뤄지는 쪽으로 협조를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필요할 경우 우리 공관의 외교 면책 특권의 포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공관원들의 서면 인터뷰에 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검토할 용의는 표명했다”고 했다. 그는 또 “문서와 기록물 접근 요청에 대해서도 외교 면책 특권과 불가침성을 포기하지 않는 범위에서 뉴질랜드 측의 조사에 협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길 희망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한편, A씨는 전날 보도된 스터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동성애자도 성도착자도 아니다”라며 “어떻게 나보다 힘센 백인 남자를 성적으로 추행할 수 있겠느냐”라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뉴질랜드 당국은 아직 한국 측에 A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측은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사안에 대한 진정을 냈으며, 인권위는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