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 우정으로 빚은 겸재의 名作

‘시화환상간’

소나무 아래서 마주 앉은 늙은 선비 둘, 그들 사이에 놓은 있는 붓과 벼루, 비어 있는 두루마리. 무엇으로 빈 종이를 채워놓을지가 고민일 수도 있겠으나 두 선비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인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 덕분은 아닐까.

 

겸재 정선(1676∼1759)의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은 화면 오른쪽 위에 쓰여 있는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시를 통해 기원을 알 수 있다.   

 

“내 시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봄에, 그 사이 경중을 어이 값으로 논하여 따지겠는가”

 

‘시화환상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와 시인으로 꼽혔던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을 공유한 절친이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품고 있는 ‘정선 필 경교명승첩’(보물 1950호)은 그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간 우정이 빚어낸 명작 중의 하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新국보보물전 2017~2019’에 출품된 경교명승첩의 감상은 이런 사연을 알고 보면 더욱 특별하다.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 명작을 낳은 약속

 

경교명승첩은 한강변이나 한양 근교의 풍광을 그린 실경산수화와 고사인물화(古事人物畵·모범, 교훈이 되는 인물의 행적을 묘사한 그림) 33점과 이병연의 편지로 구성된 상하 두 권의 화첩이다. 정선은 여기에 실린 작품 대부분에 ‘천금물전’(千金勿傳·천금을 주더라도 남에게 넘기지 말라)는 도장을 찍어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화첩에 실린 그림은 대체로 주제와 화풍, 이병연의 글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강유람과 관련된 8점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이병연과 관련된 시문이 없어 그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양천십경’이다. 정선이 현령으로 재임 중이던 양천 주변의 열 가지 풍경을 그린 것으로 이병연의 시가 쓰여 있다. 세 번째는 두 사람이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는 약속’, 즉 ‘시거화래지약’(詩去畫來之約)에 따라 그린 작품들이다.

 

‘홍관미주’
‘고산상매’

이 세 번째 그룹에 정선과 이병원의 우정을 시각화한 작품들이 많다. ‘홍관미주’, ‘창명낭박’, ‘행주일도’는 1741년 봄 이병연이 행주에서 배를 타고 양천에 있는 정선을 방문하려고 했던 일과 관련된 작품이다. 함께 매화를 감상하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고산상매’, 대화가 통하는 두 사람만의 즐거움을 드러낸 ‘어초문답’은 고사인물화의 전통적인 도상을 빌어 친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그림이다. ‘촉재제시’, ‘독서여가’는 이병연, 정선 각자의 초상화로 추정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경교명승첩에 대해 “60대의 정선이 구사한 폭넓은 화법과 개성을 확인할 수 있는 화첩”이라며 “이병연의 시가 더해져 그림의 운치가 깊어졌다”고 소개했다. 

 

◆정선과 이병연의 합작품을 “금덩어리로 여긴다”  

 

정선에게 이병연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인 동시에 그림의 소비, 유통에 큰 도움을 주는 주문자이자 중개인이었다.

 

1740년 12월 정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병연은 김간행과 이도중이 자신에게 ‘소청’(小請)을 해왔음을 밝혔다. 정선과 직접적인 친분이 없는 이들이 이병연을 통해 그의 그림을 구하려 했다는 해석되는 부분이다. 신돈복의 ‘학산한언’이라는 책에는 이병연이 중국에 가는 사신들에게 정선의 그림을 판매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병연의 이런 역할은 그림을 팔아 경제적 이익을 얻는데 느낀 정선의 거부감을 완화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조선의 사회 분위기에서 사대부 출신의 화가가 그림으로 거래를 하는 것에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이 때문에 그림을 주문할 때는 적절한 예의가 필요했다. ‘중개인 이병연’은 정선의 그림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정선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뛰어난 작품을 얻는 지렛대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정선의 그림과 이병연의 시가 어우러진 작품은 당대 최고의 예술품으로 인식된 것으로도 보인다. 18세기에 많은 수장가들이 이런 작품을 소장하길 원했는데 유엄은 “두 공의 시와 그림은 모두 한 시대에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 소장한 사람들이 누구나 구슬이나 금덩어리처럼 본다”고 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이 기사는 김가희의 논문 「정선과 이병연의 우정에 대한 재고:≪경교명승첩≫의 ‘시거화래지약’을 중심으로」(2019)와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새보물 납시었네’ 도록을 참고했다.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