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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 ‘저격’한 페미니스트 윤김지영 “일베 세계관에 머물며 ‘미투’ 조롱… 그대의 시대는 끝났다”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건국대 교수 / “‘김치녀’와 ‘보슬아치’ 망상·환상에 기초해 웹툰 생산… 기안84의 세계관은 2010년대 초, 일베가 탄생하던 그 시점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 / “미투운동에 대한 조롱이자 직접적 공격이며 여성혐오의 집약적 코드” / “빛바랜 여성혐오 코드를 재미와 유머로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던 지난 시대에 여전히 머물고 있어” / “기안84의 세계관은 김치녀 망상을 내려놓질 못해… 웹툰 악의적인 것은 성희롱, 성폭력의 엄혹한 현실을 자신의 몸과 젊음을 앞세워온 여성이 모두 다 만들어낸 것이라는 책임전가에 있어”
기안84 SNS.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전임 교수가 ‘여혐 논란’에 휩싸인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36·사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기안84의 세계관은 일명 ‘일베’가 탄생한 2010년대 초에 머물러 있으며, 논란이 된 웹툰 스토리는 ‘미투’ 운동에 대한 조롱이자 직접적인 공격이라고 논평했다.

 

윤김 교수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젊은 몸을 자원 삼아 손쉽게 살아가는 ‘김치녀’와 ‘보슬아치’에 대한 망상·환상에 기초해 웹툰을 생산해내는 기안84의 세계관은 2010년대 초, 일베가 탄생하던 그 시점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20살 넘게 차이 나는 남자상사와의 성관계로 무능력한 여성이 취업에 단박에 성공했다는 스토리야말로 현재 이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는 미투운동에 대한 조롱이자 직접적 공격이며 여성혐오의 집약적 코드”라며 “일베가 탄생했던 2010년대 초에는 기안84의 감성이 통했는지 몰라도, 지금 여기는 2020년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시대정신으로 체화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새로운 시점”이라고 비판했다.

 

윤김지영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면서 “빛바랜 여성혐오 코드를 재미와 유머로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던 지난 시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이여”라며 “그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고 덧붙였다.

 

윤김 교수는 같은 날 게재한 또 다른 글에서 “아무리 고스펙 여성도 채용 단계에서부터 면접점수 조작으로 인해 각종 공기업과 금융업계에서 고용 성차별을 당하고 있음이 뉴스에서 여러 차례 밝혀져도 기안84의 세계관은 김치녀 망상을 내려놓질 못한다”라고 다시 비판했다.

 

그는 “(복학왕)이 웹툰이 악의적인 것은 고용 성차별, 임금 성차별의 문제는 물론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의 엄혹한 현실을 자신의 몸과 젊음을 앞세워온 여성이 모두 다 만들어낸 것이라는 책임 전가에 있으며 구조적 불평등의 현실은폐에 있다”고 했다.

 

기안84는 지난 11일 공개한 ‘복학왕’ 304화에서 무능력한 인턴사원이었던 여주인공 ‘봉지은’이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깨부수는 설정으로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내용을 담아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웹툰 ‘복학왕’의 한 장면.

 

20대 초반인 여성이 40대 노총각 팀장과의 성관계를 통해 입사에 성공했다는 것을 암시한 것으로, 논란이 일자 해당 회차의 ‘조개’가 ‘게’로 바뀌는 등 수정됐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기안84의 웹툰 연재를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는가 하면, 그가 출연 중인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게시판에는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글이 쇄도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웹툰 내용이 보기 불편하다면 보지 않으면 된다”라는 누리꾼 의견도 많아 온라인 공간에선 갑론을박이 며칠째 이어졌다.

 

기안84는 이번 논란 이전에도 ‘복학왕’에서 30대 여성을 두고 “누나는 늙어서 맛없다”라고 표현해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적 있다. 또 청각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 비하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기안84는 지난 13일 공식으로 사과했다. 그는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라며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윤종 기자.

 

이어 “수달이 조개를 깨서 먹을 것을 얻는 모습을 식당 의자를 젖히고 봉지은이 물에 떠 있는 수달로 겹쳐지게 표현해보자고 했는데 이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기안84는 “또 캐릭터가 귀여움이나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내용도 독자분들의 지적을 살펴보고 대사와 그림도 추가 수정했다”라며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