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이 아름다운 충주여행/청정 종댕이길 걷다 에머랄드빛 충주호 매력에 흠뻑/백옥·활석 채취하던 활옥동굴 무더위속 겨울왕국 추위에 오싹오싹/호수에서 투명카약타고 즐기는 이색 피서로 SNS 핫플 등극/신기한 탈것 넘치는 정크아트 복합문화공간 오대호아트팩토리는 아이들의 천국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등줄기에 흐르던 땀은 금세 말라버렸고 팔뚝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일행은 “어휴 추워”라며 몸을 쓰다듬는다. 입구에서 왜 점퍼를 대여하는지 알겠다. 긴 장마가 끝나고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이 엄습했다. 하지만 이곳은 겨울이다. 충북 충주 활옥동굴. 10분이 지나면 따뜻함이 그리워질 정도니 피서지로 이곳만 한 곳을 여태 못 봤다.
#건강한 여름나기 필수품 냉면과 수육
장마가 끝나니 여름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만에 등장한 태양과 푸른 하늘이 몹시 반갑다. 그러나 땅에서 습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조금만 걸어도 땀이 쏟아진다. 긴 장마로 뒤늦게 여름휴가에 나설 계획이라면 이런 무더위를 완벽하게 피할 곳이 있다. 바로 동굴여행이다.
안전모를 쓰고 어두컴컴한 좁은 길을 허리를 잔뜩 구부려 지나야 하는 천연동굴 여행을 해 본 이들은 동굴여행을 가자고 하면 “사서 고생한다”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4차로 광폭 터널처럼 넓고 높은 데다 길이 시원하게 뻗었고 보트를 탈 수 있는 동굴 속 호수까지 있다면 귀가 솔깃할 것이다. 충주 활옥동굴은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올여름 최고의 피서지로 떠올랐다.
활옥동굴의 시원함을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종댕이길로 가야 한다. 충주호의 아름다움과 피톤치드 샤워를 즐기며 적당히 땀을 흘려야 활옥동굴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다. 많이 걸어야 하니 일단 속부터 채우자. 지난달 ‘식객’ 허영만 화백이 다녀간 냉면 맛집 삼정면옥을 찾았다. 쇠고기 편육과 돼지고기 수육이 한 접시에 2만원인데 4명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푸짐하다. 오이냉채를 올린 편육은 여름에 시원하게 즐기는 별미. 수육은 쫄깃쫄깃한 식감이 마치 족발같다. 고기로 텁텁해진 입안은 냉면으로 씻는다.
서울의 유명한 평양식 냉면집들은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밍밍한 국물 맛에 어떤 이는 맹탕이라 하고 어떤 이는 깊은 맛이 우러난다 한다. 평양식 냉면이 다 그렇듯 이곳도 국물은 간이 안 된 듯 심심하다. 일행은 “맛이 뭐 이리 심심해”라며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다. 하지만 심심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냥 먹어본다. 처음에는 싱거운 듯한데 먹을수록 깊은 육수 맛이 우러난다. 편육과 면을 함께 넣어 씹으니 진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고수의 손맛이다. 식당에 걸린 허 화백의 메모도 그렇다. ‘면의 향기, 게다가 수육의 질감은 최고’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여행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도록 돕는 것이 맛집인데 제대로 찾은 듯하다.
#종댕이길 따라 여름이 익어가네
충주 여행의 첫인상을 맛으로 기억하고 종댕이길로 나선다. 충주호를 끼고 있는 물의 도시 충주는 ‘풍경길’로 유명하다. 충주호, 남한강, 계명산 등 뛰어난 자연경관을 즐기며 걷는 풍경길은 7개 코스 73.2㎞이며 종댕이길(7.5㎞)이 인기가 높다. 계명산 줄기인 심항산과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만끽하며 사색을 즐기는 호반 숲길이다. 마즈막재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큰 길을 따라 난 데크길을 1.5㎞ 정도 걸으면 숲해설안내소가 나오는데 여기서 종댕이길 여행이 시작된다. 오솔길로 들어서기 전 아름다운 충주호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겹겹이 쌓인 능선 사이로 호수가 잔잔하다. 많은 비 때문인지 진한 에메랄드빛을 발산하는 호수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워 낭만을 더한다.
산책길은 아기자기하다. 상수리나무, 전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뤘고 등심붓꽃, 옥잠화, 백리향, 구절초 등 다양한 식물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이름도 친근한 종댕이길은 상종마을과 하종마을에 세워진 종당(宗堂)의 충청도 사투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심항산도 이곳에서는 종댕이산이라 부른다. 전체 코스는 꽤 길다. 마즈막재에서 출발해 심항산 둘레를 돌고, 충주호반을 따라 충주댐물문화관까지 이어지는 전체 코스는 총 길이 11.5㎞로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난이도가 높아 보통 느즈막재에서 심항산을 돌아 느즈막재로 돌아오는 7.5㎞ 구간(약 2시간30분)을 많이 걷는다.
체력소모가 큰 한여름에는 숲해설 안내소에서 시작해 심항산 둘레를 걷는 3.8㎞(약 1시간30분) 코스가 적당하다. 숲해설 안내소에서 심항산 정상으로 곧장 이어지는 숲길도 있다. 가온길은 1.2㎞(약 20분), 봉수대길은 0.7㎞(15분) 정도다. 심항산 둘레를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호반길을 따라 걷는다. 생태연못을 지나 원터정(육각정)과 밍계정에 서니 발밑에 아름다운 충주호가 펼쳐진다. 조망대 2곳, 쉼터 2곳 등 전망 포인트 6곳이 마련됐으며 2조망대가 으뜸이다. 탁 트인 충주호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슴을 펴고 따뜻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셔 본다.
여섯 번째 쉼터에서 왼쪽 오르막길로 100m 정도 걸으니 아름다운 출렁다리다. 충주호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고 다시 오르막길로 300m 오르면 출발했던 숲해설안내소로 돌아온다. 둘레길도 힘들 것 같으면 숲길을 따라 출렁다리까지만 다녀와도 된다. 상종마을 도로가에 주차하고 출렁다리까지 이어지는 0.8㎞의 오솔길도 강추다. 비강을 헤집고 들어오는 풀내음과 풀벌레 소리 덕분에 종댕이길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온몸이 오싹오싹 더위야 물렀거라
적당히 땀을 흘렸으면 차로 8분 거리의 활옥동굴로 향한다. 지난해 문을 열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동굴입구에 서자 마치 냉장고 문을 열 때처럼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덮친다. 얼마나 차가운지 입구에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하다. 연중 섭씨 11~15도의 온도를 유지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동굴은 아주 높고 넓은데 일제강점기이던 1919년에 개발이 시작된 국내 유일의 백옥·활석·백운석 채취 광산이다. 길이는 공식 57㎞, 비공식 87㎞에 달하고 지하 수직고는 711m로 동양 최대 규모다. 한때 8000여명이 일했지만 값싼 중국산 활석의 공세와 낮은 채산성으로 폐광된 뒤 오랫동안 방치됐다 지난해 활옥동굴로 문을 열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얼마나 넓은지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다. 여기저기 길도 많아 자칫하면 길을 잃을까 걱정될 정도지만 너무 시원해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진다. 백옥을 캐던 곳이라 다른 동굴과 달리 벽면과 천장이 하얗고 밝다. 여기에 은은한 조명이 동굴을 더욱 아늑하고 분위기 넘치게 만든다. 즐길 것이 많아 천천히 시간을 두고 피서하기 좋은 곳이다. 한국 와인과 몰도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동굴셀러가 마련돼 ‘추운 몸’을 녹일 수 있다.
‘바닷빛의 공간’은 동화의 나라에 온 듯 환상적인 조명이 가득하고 작은 연못에서 물고기떼가 노닌다. 아름다운 조명으로 꾸민 포토존이 곳곳에 마련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곳곳에 채취한 광물과 광부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던 거대한 권양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광물을 채취하던 작업장도 재연돼 있다.
활옥동굴 여행은 동굴보트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상상이 가는가. 동굴 속에서 보트를 탄다니. 보트장에 도착하자 비현실적인 동굴속 호수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동굴속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모아 보트장을 만들었는데 2∼3인용 투명 카약을 타고 동굴 호수를 여유 있게 누비며 신비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물은 손을 조금만 담가도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라면 오대호아트팩토리도 꼭 들러보시길.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선정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충주 양성면 옛 능암초등학교부지에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고철, 쓰레기, 폐품을 활용하는 정크아트(Junk Art)의 창시자 오대호 작가가 꾸민 복합문화공간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폐교 운동장에 3m가 넘는 거대한 로봇들이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서 있다. 또 뒷바퀴가 멋대로 돌아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자전거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다양한 탈것들이 넘쳐나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곳이다. 또 기계의 원리와 역할을 이해하면서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2000년 충북 음성의 작은 창고에서 먹고 자며 작품 제작을 시작한 오대호 작가의 작품은 이제 6만점이 넘고 미국 산호세 핸드 앤드 마인드 아트 갤러(Hand & Mind Art Gallery)에도 극의 작품이 전시될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폐인처럼 두문불출하며 작품에만 몰두하다 보니 한때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다. 또 2m50cm 에이리언을 제작하다가 무너진 상체에 몸이 깔려 죽다 살아기도 할 정도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그의 작품중 가장 큰 것은 높이 15m에 달한다. 또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스팀 펑크 초청전에서는 작품 ‘파라오의 최후’가 1억2000만원에 판매됐을 정도로 작품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앙탑공원도 충주호를 배경으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피크닉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충주=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