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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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재난문자 하루 평균 79건…우리가 사는 위태로운 세상 [S 스토리]

코로나·수해로 2020년 1만6782건 발송
이통 3사 연결 모든 휴대전화에 송출
행안부·기상청·지자체등 발송… 비용 ‘0’
시도 때도 없는 문자에 수신거부 사례도 늘어
두루뭉술한 내용에 실제 재난 대비 못 하기도
지자체 상황실엔 재난문자 관련 항의 폭주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지난 16일 경남 창원에서 딸이 살고 있는 광주를 찾은 이모(75)씨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광주시에서 발송한 문자였다. 이씨는 순간 당황했다. 누구에게도 광주에 온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광주시가 어떻게 알고 문자를 보냈을까? 재난문자는 재난피해 예방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송하는 문자메시지다. 최근 집중호우까지 겹치면서 산사태 등을 알리는 재난문자가 쏟아졌다.

 

재난문자는 누가 어떻게 보내는 걸까, 문자 전송 비용은 누가 내나,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보낼까. 재난문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2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7개월간 발송된 재난문자는 전국 기준으로 1만6782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61건)보다 36배가량 많다. 올 들어 국민들은 하루 평균 79건의 재난문자를 받은 셈이다. 재난문자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재난문자는 어떻게 보낼까. 재난문자는 국내 이동통신 3사의 기지국을 통해 전송된다. 기지국에 연결된 모든 휴대전화에 강제 발송된다. 기지국 단위로 최대 90자까지 문자 전송이 가능하다. 휴대전화는 기지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신호를 받아 사용한다. 기지국의 전파는 장애물이 없을 경우 최대 15㎞까지 도달한다. 재난문자는 기지국의 전파가 도달되는 모든 휴대전화에 메시지를 보낸다. 별도로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

 

전북 전주에 사는 김모씨가 올여름 휴가를 부산으로 갔다면, 어느 지역의 재난문자를 받을까. 답은 부산이다. 김씨가 비록 전주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했더라도 재난문자는 가장 가까운 기지국의 전파를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지국이 행정구역 경계에 있을 경우 동시에 여러 지자체의 재난문자를 받을 수 있다.

재난문자는 휴대전화의 단문 메시지와는 다르다. 재난문자는 기지국에서 모든 휴대전화에 동시에 전파를 보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기지국에서 곧바로 개별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전송하는 라디오 수신과 같은 개념이다. 하지만 단문 메시지는 기지국에서 일대일 통신을 기반으로 모든 휴대전화에 개별적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때문에 문자가 한꺼번에 몰리면 트래픽이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분의 전송 시간이 걸린다.

 

재난문자의 송출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재난문자를 보내는 주체는 행정안전부와 기상청, 각 주무부처, 지자체 등이다. 행안부는 국가비상사태나 민방공 상황정보, 호우나 태풍주의보 등의 기상 특보때 재난문자를 발송한다. 기상청은 기후 관련, 산림청은 산사태 위기 경보 때 각각 보낸다.

 

재난문자 송출 기준은 태풍과 호우, 홍수, 한파, 산불 등 20개 항목으로 명시돼 있다. 코로나19 등 감염병과 미세먼지, 전력공급 등이 재난문자 대상에 포함된 것이 특이하다. 재난문자는 표준문안이 있다. 아무렇게나 재난문자를 보낼 경우 생기는 국민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다.

 

◆통신사서 강제 발송… 앱 설치해야할 단말기도

 

재난문자는 재난의 위급 정도에 따라 공습경보 등인 위급재난, 테러 등 긴급재난, 재난경보를 담은 안전안내문자로 나뉜다. 코로나19 관련 문자는 안전안내문자로 발송된다.

 

재난문자의 소리는 문자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위급재난은 가장 큰 소리인 60dB, 긴급재난은 40dB로 비상 상황을 알린다. 반면 안전안내문자는 일반문자 수신환경 소리와 비슷하다. 긴급재난은 안전안내문자와 달리 위급재난의 경우 사용자가 휴대전화 설정의 수신거부를 할 수 없다.

문자 발송 비용은 누가 낼까? 재난문자는 공익적 목적으로 보내기 때문에 무료다. 통신사는 기존 기지국을 활용해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통신사가 비용을 청구하지 않지만 재난문자 발송에 필요한 장비의 유지 비용 등은 행안부 예산이 사용된다.

 

재난문자를 받을 수 없는 휴대전화 단말기가 있다. 재난문자 서비스가 가능한 단말기는 2G와 4G(2013년 이후 출시)다. 3G와 4G(2011∼2012년 출시) 단말기는 재난문자 수신 기능이 없다. 올 1월 기준 국내 사용 중인 전체 휴대전화 4946만대 가운데 재난문자를 수신하지 못하는 휴대전화은 151만대(3%)에 이른다. 이들 휴대전화는 배터리 과다 소모 등의 이유로 긴급재난문자 발송 방식인 CBS(Cell Broadcasting Service)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다. 이들 휴대전화의 경우 행안부의 안전디딤돌 앱을 설치해 재난현황을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아니라서 앱을 내려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지자체는 무분별한 재난문자 송출을 제한하고 문안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서술형으로 바꾸고 있다. 울산시는 비상상황 이외의 재난 발생 시 송출 적절성을 먼저 따지는 송출판단회의를 열고 있다. 또 송출 문안 자문회의와 울산대 국어문화원 공공언어 감수를 거쳐 노인들도 새로운 송출 문안도 작성했다.

 

◆날마다 문자폭탄… 뻔한 내용에 주민들 짜증

 

경기 성남에 사는 오모씨는 지난 12일 자가용으로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가면서 재난문자 폭탄으로 곤욕을 치렀다. 휴가지인 경남지역으로 내려가면서 하루에만 무려 12통의 재난문자를 받은 것이다. 코로나19, 집중호우, 수해복구와 관련한 재난문자가 지자체 경계를 지날 때마다 휴대전화에 울려댄 것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6월 27일부터 한 달간 광주시가 보낸 재난문자는 모두 308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동안 광주시민은 다른 지자체보다 하루 평균 10.2건의 재난문자를 더 받은 셈이다.

 

광주시는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확진자 나이와 성별 등 인적사항과 이동 경로를 담은 재난문자를 보내고 있다. 또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다며 가까운 보건소나 선별진료소를 찾아가서 검사받을 것을 안내하고 있다.

 

이처럼 재난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오면서 수신을 거부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재난문자가 새 확진자와 그 동선을 알려주는 정보도 있지만, ‘오늘은 환자 발생하지 않음’과 같은 알맹이 없는 문자도 상당수에 달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두루뭉술한 재난문자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지난 8일 집중호우가 내릴 당시 전북 전주에 사는 최모씨는 전주시에서 보내는 재난문자를 받았다. ‘집중호우로 저지대 침수가 우려되니 안전지대로 대피해 주시기바랍니다’라는 내용이다. 최씨는 “저지대 지역명이나 건물 등 구체적인 내용을 안내하지 않아 결국 차량이 침수되는 피해를 보았다”고 언성을 높였다. 부실한 재난문자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지난 12일 ‘부산시 확진자 관련 문자를 제대로 시행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지자체 상황실은 재난문자와 관련해 항의하는 민원인들로 곤욕을 치른다. 코로나19의 경우 확진자가 다녀간 상점과 상호가 유사하거나 옆 가게에서 피해를 봤다며 항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끄러워 못살겠다며 재난문자 전송목록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빼달라거나 수신거부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는 전화도 상당수다. 광주시 관계자는 “재난문자를 보내고 나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할 정도의 항의성 전화가 온다”며 “문재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 보내지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의 항의를 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