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여름 철새 제비가 제주 도심 주택가에 수백에서 수천 마리씩 한꺼번에 날아들고 있어 화제다.
지난 22일 저녁 제주시 노형동 한 주택가. 땅거미가 질 무렵, 갑자기 하늘에 제비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나타났다.
한둘씩 전깃줄에 자리를 잡더니 몇 분도 안 돼 꽉 들어찼다.(사진) 늦게 온 제비는 자리가 없어 한참을 헤매다 찾은 구석에서 간신히 날개를 접었다.
주민들은 행운을 물어다 준다는 제비가 수백 마리씩 날아들었다고 반기면서도 배설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 강모(52)씨는 “이달 들어 매일 오후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제비떼가 나타난다”며 “주차 전쟁이 벌어지던 이면도로에도 차들이 배설물을 피해 사라져 안 보인다”고 말했다.
제비가 이렇게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장거리를 이동하기 전에 안전한 곳에 모이는 습성 때문으로 알려졌다. 제비는 통상 음력 3월 3일(삼짇날)에 우리나라로 날아와 음력 9월 9일(중구일·重九日)에 중국 양쯔강 남쪽으로 떠난다. 제주도는 제비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잠시 머무르는 중간 기착지이다.
제비는 번식기가 끝난 9~10월 대집단으로 활동하며 간혹 육지부 이동 무리가 제주를 거쳐 남쪽으로 이동한다. 8월 말부터 제주도내 곳곳의 전신주에 수백마리에서 수천마리씩 앉아서 고향을 떠날 채비를 한다. 매년 9월 초순 제주에서 확인되는 제비는 수만 마리에 이른다. 중산간이나 산록도로변 전깃줄에서 관찰된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제주시내 일부 주택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시 칠성로 상가 주변에 전신주가 사라진 것은 제비들의 배설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한 결과다.
주민들은 제비 떼가 먹이활동 등 서식에 좋은 환경도 아닌 도심지에 몰려드는 것에 의아해하고 있다.
조류 전문가인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제비들이 특정 지역에 집중 모여드는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새들은 시기에 따라 일정한 영역을 차지한다. 번식기에는 번식영역, 겨울철에는 월동영역, 이동기에는 집합영역을 지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제비는 개체수의 급감으로 천연기념물 지정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제비는 환경부 지정 ‘환경지표종’의 하나다. 제비는 20년 전에 비해 5% 정도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김 학예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번식하던 제비가 희귀철새로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