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 위원의 방한으로 양국 협력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그동안 미·중 갈등 속에서 중립적 태도를 유지해온 한국은 외교적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양 위원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2일 부산에서 코로나19 대응 협력, 고위급 교류 등 한·중 관심 현안, 한반도 문제와 국제 정세 등 폭넓은 이슈를 논의했다.
우선 양국이 합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조기 방한은 꽉 막힌 대북문제를 푸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멈췄던 양국 관계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런 ‘선물’을 안겨주며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달라는 ‘청구서’도 함께 내민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화웨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남중국해 등의 현안을 놓고 미국과 갈등하면서 우군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양 위원은 한국 방문에 앞서 싱가포르를 방문해 싱가포르 및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과의 협력 강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을 포함한 27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홍콩보안법 통과에 우려의 뜻을 표명했을 때 참여하지 않는 등 자유진영 국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상황에서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한국에 대한 중국의 추파를 우려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일·한 관계는 개선 조짐을 보이지 않고, 미·한도 주한미군 주둔 경비 협상 등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삐걱거린다”며 “미·중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가운데 중국의 이번 움직임은 일·미·한의 틈새를 찔러 분열을 노리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보고 있다고 신문이 전했다.
다즈강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장은 이와 관련해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도 객관적 태도로 중국과 우호를 유지했다”며 “양 정치국원 방한은 일본과 달리 객관적 태도를 보인 한국에 중국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보도했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협력 관계가 중요하다’는 원칙적 답변만 내놓고 중국에 명확한 지지 의사를 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 주석의 방한이 다가올수록 중국의 압박이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관측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중국이 미국 동맹국 중 ‘약한 고리’라고 생각되는 한국에 자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해도 중립적 입장을 지켜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엄청나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며 “특히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시 주석이 방한해 중국에 유리한 얘기가 발표되면 우리로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도쿄·베이징=김청중·이우승 특파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