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지금 정부와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강 대 강 충돌을 빚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사흘간의 2차 집단휴진에 들어가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으로 맞섰다. 의료계는 다시 불이익이 생긴다면 무기한 파업을 벌이겠다고 응수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6일 낮 12시 기준 의원급 의료기관 휴진율은 10.8%로 집계됐다. 이번 2차 파업에는 이미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전공의와 전임의까지 참여해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날 새벽까지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수도권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 전임의에 대해 진료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정부가 의료기관이 아니라 의사인 전공의·전임의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휴진율이 10%를 넘어 차질이 발생한다고 판단할 경우 각 지자체장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부산의 경우 서구, 강서구 등 5곳이 의료기관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업무개시명령은 위반할 경우 면허정지 또는 면허 취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중한 규정이다. 신중한 입장이던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고, 응급실·중환자실 등에 업무차질이 빚어지자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진료 공백을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1일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도 예정대로 진행한다. 앞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는 의사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오후 6시 기준 의사 실기시험 접수인원 3172명 중 2823명(89%)이 응시 취소 및 환불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정부는 의협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의협 임시회관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의협이 1·2차 집단휴진을 결정하고 이를 시행한 것은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부당한 제한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칙적 법 집행을 통해 강력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비상의료계획을 실효성 있게 작동해 의료 공백이 없도록 하고, 의료계와의 대화를 통한 설득 노력도 병행하라”며 청와대의 비상관리체계 강화도 당부했다. 청와대는 윤창렬 사회수석이 맡아온 의료 현안 태스크포스(TF)를 김상조 정책실장이 직접 맡도록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긴급 범정부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무단으로 현장을 떠난 전공의 등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제재조치를 신속히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강경대응에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의료계의 정당한 의사표현에 대해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조치”라며 “단 한 명의 의사, 의대생이라도 행정처분이나 형사고발 등이 가해진다면 전 회원 무기한 총파업으로 강력히 저항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았다. 서울대의대, 고대의대 등 교수들은 전공의 및 의대생들의 뜻과 행동을 지지한다며 “의대생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스승인 우리 교수들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은 정부가 정책을 성급하게 추진하면서 총파업이 벌어졌다며 서로 양보할 것을 요청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공공의대 설립 자체가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라며 “지금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의료 종사자들”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정부를 압박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참여연대, 보건의료노조 등 시민단체들도 잇따라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진경·박현준·이강진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