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뿌리의 근간을 보수우파에 두고 있는 미래통합당이 새 당명으로 '국민의힘'을 쓰기로 잠정 결론 내면서 당 이미지 쇄신에 따른 컨벤션 효과와 기존 지지자들의 이탈 가능성이 교차하고 있다.
통합당은 31일 비상대책위원회와 의원총회를 열고 새 당명을 당 안팎의 논란 끝에 국민의힘으로 잠정 결정했다. 올해 2월 보수대통합을 기치로 내건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지 6개월 만에 다시 교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당명 교체는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한국당(1995년)은 민주자유당의 5·6공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이었고, 새누리당(2012년)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탄생시킨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이 작용했다. 새누리당에서 바뀐 자유한국당(2017년)도 국정농단 사태의 장본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 이미지에서 지우고자 하는 목적이 컸다. 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교체하기로 한 것 역시 여전히 유권자들에게 각인된 '국정농단의 후예', '탄핵당(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통합당의 당명 교체를 통한 변신은 외연 확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국민의힘으로 당 이름이 바뀌면서 보수적 색채는 옅어졌다. '한국'이나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간 당명을 피하고 '국민'이라는 키워드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과거 큰 선거를 앞둘 때면 박정희·박근혜 향수를 자극해 지지층 결집에 나섰던 행보와 대비된다. 여기에는 무당층과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에 골몰하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의중과도 무관치 않다.
일반적으로 정당은 지지층을 형성하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당명 개정 효과도 본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명을 교체할 때마다 주로 '민주'가 들어간 당명을 선호했던 데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당명에 '자유'를 넣은 것 역시 보수 진영의 핵심 가치인 자유를 강조해 지지층 이탈을 막기 위함이다.
국민의당과 유사 당명 논란에도 불구하고 통합당이 새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결정한 건 시대 흐름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통한 국민통합을 기본 지향점이자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김 위원장도 보수 대 진보와 같은 진영 논리나 이념 대결을 탈피해 국민 분열 대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낸 바 있다. 김 위원장은 31일 새 당명으로 '국민의힘'을 낙점한 이유로 "국민이라는 단어 자체가 헌법 정신에도 맞다"고 했다.
통합당의 당명 공모에서도 '국민'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접수됐다. 김수민 통합당 홍보본부장은 "국민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국민 대다수 간절한 소망을 읽을 수 있었고 이를 당명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며 "국민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3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당명 교체는 제1야당으로서 불안정한 입지 속에 수세에 놓인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목적도 없지 않다.
통합당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내리 연패했다. 올해 4·15총선에서는 궤멸에 가까운 참패로 당 지도부도 구성하지 못해 '외부의 힘'을 빌려 당이 비상 체제로 가동될 만큼 수년째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와 내후년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당명 변경은 이러한 침체한 당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들에게도 새로운 당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당명을 교체한 후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경험도 있다. 신한국당은 당명 교체 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139석을 획득해 원내 제1당으로 자리매김했고, 한나라당 시절인 2011년 재보궐선거 패배로 당시 홍준표 지도부가 물러난 뒤 이듬해 새누리당으로 당 간판을 바꿔 총선과 대선에서 연승했다.
반면 당명 변경 효과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당명을 교체할 경우 일시적인 분위기 쇄신 효과는 있지만 잦은 변경으로 인해 특정 정당과 유권자의 친밀도인 '정당 일체감'을 높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특정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가진 당파적 태도나 귀속 의식이 정당 일체감의 상승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당 이름을 자주 바꿀수록 정당과 유권자와의 연계성 약화로 정당 일체감이 떨어지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당의 전통 당원들의 상당수가 보수 성향이 짙은 만큼 새 당명이나 정강정책에 반발한 골수 지지층이 연쇄적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당명만 교체할 뿐 그에 걸맞은 새로운 이념이나 정책을 모색하는 노력을 내부 반발로 인해 게을리할 경우 당명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당명 교체에 집착하는 대신 차라리 하나의 당명을 오랜 기간 유지하면서 시대 흐름에 맞게 당의 비전을 가다듬고 유권자와 소통을 강화하는 쪽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통합당이 31일 '국민의힘'을 새 당명으로 결정하자 여당 일각에서는 이 이름이 과거 시민단체나 정당의 이름을 도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은 명백한 이름 훔치기"라며 "17년 전 결성한 우리 시민단체 '국민의힘'이 통합당의 새 당명으로 거론되는 것에 유감이고 불쾌하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자신이 2003년 시민단체 '국민의힘' 공동대표였다면서 통합당을 향해 "당신들은 이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국민의 힘이 조롱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 "국민의 힘에 의해 탄핵당한 후예들이 무슨 국민의 힘을 운운하나. 국민의 짐이 될 뿐"이라는 글도 연이어 올렸다.
박범계 의원은 페이스북에 2012년 만들어진 정당 '국민의힘'의 사례 등을 함께 거론하면서 "빼끼기(베끼기) 대왕? 부결될 듯"이라며 도용 의혹을 제기했다.
최민희 전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분화하면서 명계남 선생과 정청래 의원이 만들었던 단체"라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