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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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장갑차 들이받은 SUV, 사고 몇 분 전 운전자 바뀌었다?

포천서 추돌사고로 SUV 탑승자 4명 사망
경기 포천시 영로대교에서 지난 30일 밤 발생한 미군 장갑차와 SUV 차량 추돌사고로 SUV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돼 있는 모습.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경기 포천시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한 대가 미군 장갑차를 뒤에서 들이받아 SUV에 타고 있던 50대 남녀 4명이 모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빠른 속도로 달리던 SUV가 장갑차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추돌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으나, 사고 몇 분 전 SUV 운전자를 바꾼 정황과 차량이 비틀거린 정황 등이 확인되면서 음주운전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3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30분쯤 포천시 관인면 중리 영로대교 왕복 2차로에서 50대 남성 2명·여성 2명이 탑승한 SUV(맥스크루즈)가 미군 210포병여단 수송용 장갑차를 뒤에서 강하게 들이받아 SUV 탑승자 전원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망자들은 2쌍의 부부로, 당시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갑차에 타고 있던 미군 1명도 가벼운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가 난 장갑차는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강원 철원군에 있는 실사격 훈련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 사고로 SUV는 대부분 파손됐고, 장갑차의 무한궤도 일부가 부서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도로는 일대를 잘 아는 주민과 인근 로드리게스 사격장(영평사격장)에서 훈련하는 군용 차량들이 주로 이용해 평소 통행량이 적은 곳이다. 특히 야간에는 군 차량 이외 통행량이 거의 없고, 직선 도로여서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사고가 난 장갑차는 어두운 색으로, 후면 등도 승용차만큼 크고 밝지 않아 식별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고 당시엔 군용 차량이 이동할 때 동행하며 불빛으로 이동 사실을 표시하는 ‘콘보이’(호위) 차량도 동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SUV 운전자의 전방주시 소홀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30일 오후 9시30분쯤 경기 포천시 관인면 중리 영로대교에서 미군 장갑차와 SUV 차량 추돌사고가 발생해 경찰관들이 현장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제공

그러나 단순 전방주시 소홀로만 단정 짓기에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포천시에 사는 사고 SUV 탑승자들은 해당 도로에서 군용 차량이 자주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사고가 난 도로가 거의 직선이라 일반적으로 굽은 시골길에 비해 전방주시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날 동승자들이 함께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고, 블랙박스 분석 결과 사고가 나기 수 분 전에 운전자를 바꾼 정황과 차량이 다소 비틀거린 정황 등도 확인돼 경찰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에는 다리 진입 전 상황까지만 녹화가 돼 있고, 사고 상황은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러한 의문점을 해소하고 사고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SUV 운전자 A씨에 대한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부검 결과가 약 2주 후 나오면 음주 여부 등 당시 운전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언론에 “SUV 탑승자 전원이 사망해 현재로서는 사고 원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미군 측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결과를 경찰이 받아 사건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주한미군 사령부는 “비극적 사고로 사망한 민간인 가족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에서의 훈련을 중단하겠다고도 전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