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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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원이 가족 명의로 76억 ‘셀프 대출’… 집 29채 매입

부동산가격 상승한 2016년부터 모친·부인 등 대표기업 29건 대출
아파트·오피스텔·연립주택 구입… 평가 차익만 수십억원 달할 듯
“금융질서 문란” 은행 신뢰도 타격… “대출금 회수·내부 시스템 정비”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 직원이 가족 명의로 76억원 규모의 대출을 실행했다. 가족들은 이 대출금으로 부동산 수십채를 사들였다. 특히 이들 행위는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규제 정책을 쏟아내던 시기에 이뤄져 비판이 더 거세다. 기업은행은 내부감사에서 해당 직원을 적발해 면직 처리했다.

1일 윤두현 미래통합당 의원실이 기업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까지 서울의 한 기업은행 지점에서 근무한 A 차장은 2016년 3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자신의 가족 명의로 총 29건의 부동산담보 대출을 실행했다. 대출금 규모는 약 75억7000만원이다.

A씨의 모친, 부인 등 가족이 대표이사로 있는 법인기업 5곳에는 26건 대출을 실행했다. 총 73억3000만원 상당의 대출이 나갔다. 가족인 개인사업자에게도 3건에 걸쳐 2억4000만원을 대출해줬다.

A씨 가족은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사들이고, 이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아 다른 부동산을 구입하는 식으로 부동산 수십채를 사들인 것으로 기업은행은 파악하고 있다. 은행에 담보로 잡힌 부동산은 경기 화성 일대 아파트와 오피스텔, 부천의 연립주택 등 총 29채다.

기업은행은 한 달 전쯤 내부감사를 통해 이 사실을 인지하고 대출 취급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사건을 여신·수신 업무 취급 절차 미준수 등 업무 처리 소홀 사례로 판단해 지난달 31일 A씨를 면직 처리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업무를 통해 개인의 사적 이익을 취한 사건”이라며 “이해상충행위를 금지하는 임직원 행동강령을 위반해 금융질서 문란을 야기했다는 것이 면직의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이 본인 가족 또는 관련 기업에 대한 대출을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규정 위반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너무 과했다는 것이 은행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추후 법률 검토를 거쳐 A씨를 고발하고 대출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업은행은 해당 대출을 승인해준 지점장도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인사 조처했다고 알렸다. 대출은 지점장 승인 없이 실행될 수 없다. 다만 은행 측은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지점장에 대한 개인의 인사정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 가족들이 아파트 등을 대거 사들인 화성, 부천 등 수도권은 최근 서울과 함께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A씨 가족들이 보유한 부동산의 평가차익도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이 부동산을 처분해 이익을 실현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2017년 6월19일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맞춤형 대응방안’부터 지난달 4일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까지 3년여간 총 23건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며 투기 제한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래통합당 윤두현 의원

윤 의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값 폭등 정책으로 온 국민이 박탈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심히 유감”이라며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다른 시중은행보다 내부통제 기준이나 직원 개개인의 내부절차 규정이 더 잘 지켜져야 함에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도록 뒀다는 것은 규정의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부자 거래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직원 본인의 대출만 제한됐지만, 앞으로는 직원 가족과 관련된 대출 등 거래는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