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해 집단휴진을 벌여온 의료계가 단일 요구안을 도출했다. 의료계는 이를 바탕으로 오는 7일 의협이 예고한 3차 전국의사 총파업 전까지 국회, 정부와 집중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는 3일 오후 비공개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내부 단일 협상안을 도출했다. 범투위는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전공의, 전임의, 의과대학생으로 꾸려진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젊은의사 비대위는 전날 의협 집행부와 단일 협상안에 대해 이견을 조율한 데 이어 범투위에서 추가 논의를 진행했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투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젊은의사의 요구안을 범투위에서 받았고, 그 내용을 반영해 의료계 단일안을 도출했다”며 “이른 시일 내 요구안을 가지고 정부 및 국회와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전공의, 전임의 집단휴진이나 7일로 예고된 전국의사총파업 계획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날 도출된 안건은 (정부와의 합의가 아니라) 의료계가 정부, 여당과 대화하려는 합의안”이라며 “7일 이전까지 최대한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과 사전 조율이 완료됐느냐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대화 자체는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의협 2차 총파업을 앞두고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중단’하겠다는 정부 제안에 대해 전공의 측이 ‘철회’를 명문화해야 한다며 반대해 합의가 어그러진 바 있다. 단일안으로 의료계와 정부·국회가 대화에 나서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젊은의사 비대위는 이날 의료 현장 필수인력 투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는 등 강경일변도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젊은의사 비대위는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 등) 필수인력 투입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함께 장기화된 단체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필수인력 재조정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원내 코로나19가 발생함에 따라 필수 의료 분야에 자발적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정부, 국회는 의료계와의 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 의사 파업사태 논의를 위한 국회 특위를 구성키로 잠정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의료계가 제기하는 여러 문제를 다 포함한 논의를 하기 위해 국회 공공의료 확충,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특위를 국회 내에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성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여야가 논의 중인 가운데 여·야·정 및 의사가 모두 참여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우리 당의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은 유효하다”며 “범투위에서 진전된 협상안이 도출되면 현재 의료계에 내려진 행정처분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적절한 처리방안이 마련되도록 논의할 것”이라며 “국회 내 특위 구성을 통해서 전달체계 개편, 수련환경 개편, 지역 가산수가의 신설 등 의료체계 개선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범투위가 아직 공식적으로 요구안을 제안하지 않았다면서도, 이번만큼은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가 받아들인다면 이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합의 내용을 지켜갈 것”이라고 밝혔다.
갈등을 봉합할 시간이 많지는 않다. 정부는 지난 1일 시행하기로 했던 의사국가시험을 8일로 연기했다. 시험 응시를 원하는 의대생은 4일 오후 6시까지 재신청해야 한다.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의협은 오는 7일부터 3차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협상이 의료계의 민원을 해결하는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의료 공공성의 확대를 위해 시민이 함께하는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도권과 지방의 극심한 의료 불평등과 격차를 개선하기 위해 이번 정부안의 정책 방향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의사 늘리기, 공공의대 설립 등은 흔들림 없이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경·최형창·이강진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