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일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생면부지의 여성들한테 마구 침을 뱉은 혐의로 구속될 뻔했던 20대 남성이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풀려났다. 법관은 형사소송법 원칙대로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남성을 풀어줬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시대에 남에게 비말(침방울)을 내뿜는 행위는 보다 엄격히 다뤘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9일 서울북부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 정수경 영장전담 판사는 전날(8일) 상습폭행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를 상대로 영장실질심사를 실시한 뒤 영장을 기각했다.
정 판사는 “도망할 염려 및 증거인멸 우려 등 구속 사유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기각 사유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검찰과 구속영장 재신청 여부를 협의한 뒤 여의치 않으면 그냥 ‘기소’ 의견만 달아 검찰에 송치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8월 중랑구 일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여성들만 골라 침을 뱉고 달아난 혐의(상습폭행)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말 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A씨를 입건했다.
입건 당시 알려진 피해자는 3명이었다. 그런데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를 본 여성이 최소 23명으로 크게 늘었다. 피해자 중에는 심지어 임신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검찰 송치 후 보강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정신병력이 없고 범행 당시 술을 마신 상태도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이 시점에 왜 하필 사람에게 침을 뱉는 범죄를 저질렀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A씨는 “그냥 장난삼아 그랬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 범행으로 사안이 중대하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일각에선 A씨가 여성만 골라 침을 뱉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여혐)’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론도 내놓는다. 앞서 서울 강남 일대에선 늦은 시간에 생면부지의 젊은 여성만 골라 얼굴을 때리고 도망친 남성이 붙잡혀 구속됐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