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1918/캐서린 아널드/서경의/18000원
‘팬데믹 1918’은 1918~1919년에 최대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 ‘스페인 독감’에 관한 대중 역사서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 캐서린 아널드는 방대한 1차 자료와 기록 문서를 바탕으로 치명적인 이 질병의 무자비한 횡보를 따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병으로 죽어야 했던 평범한 병사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 자신의 안위를 살피지 않고 오로지 인류애 하나만으로 구호에 나섰던 간호사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사람들이 인류 멸망의 공포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스페인 독감에 관한 충격적인 보고서인 셈이다.
책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이라 불린 이 대유행병은 초기엔 ‘스페인 여인‘이란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이 온몸에 검은 플라멩코 드레스를 두르고 머리에는 만틸라를 쓴 채 손에는 부채를 든 깡마른 해골 여인으로 여러 출판물에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에 여성 비하적인 클리셰로 여겨져 배격됐다고 한다. 스페인 독감의 증상은 무시무시했다. 최소 24시간부터 4~5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두통, 오한, 마른기침, 발열 등이 나타났고, 전신 피로와 함께 기관지염이나 폐렴이 뒤따랐다. 특히 폐에 고름이 차면서 산소가 부족해져 발생하는 ‘헬리오트로프 청색증’ 때문에 피부가 검푸른색으로 변했고,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정신착란을 보이며 죽어갔다. 회복한 사람 중에서도 평생 신경 질환, 심장병, 무기력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마스크는 당시 유행병의 아이콘이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요즘과 마찬가지로 당시도 예방 수단은 마스크가 대세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하는 것은 위법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교통경찰도 마스크를 쓰고 교통을 통제했다. 가족사진 촬영도 마스크를 쓴 채로 했다. 심지어 개와 고양이들도 마스크를 착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혼여행 중이던 한 커플은 의사에게 사랑을 나눌 때도 마스크는 쓰고 있었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보면 기괴한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코로나19가 우한이 진원지로 여겨지듯 스페인 독감 진원지의 유력한 후보로는 프랑스 북부 에타플이 꼽힌다. 대규모 군사기지가 있던 에타플에는 군인만이 아니라 말 수천 마리와 식량 조달을 위한 돼지, 오리, 거위, 닭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는 오리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병원소로서 배설물로 토양을 오염시키고, 먹이를 뒤지던 돼지가 이것을 삼켜 바이러스를 배양했다가 다시 인간과 접촉하면서 인간 독감 바이러스가 기존의 조류 바이러스와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위험 요소는 또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였다. 1910~1911년 만주에선 폐페스트가 창궐했는데 전쟁 지원을 위해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이곳으로 옮겨왔다. 게다가 수많은 보병 사단이 이곳에 집결했다가 철도를 통해 흩어졌다. 밀접 접촉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전파되는 데 전쟁이 주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저자는 1918년 봄부터 1919년 여름까지 이 ‘스페인 여인’의 죽음의 무도는 멈추지 않았고, 그 대상은 젊은이들에 집중됐다고 전한다. 흔히 노약자나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인플루엔자에 취약해 목숨을 많이 잃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때 희생자는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으며, 이들은 인생 절정기에 죽어야 했다. 책에선 가족과 이웃, 친구를 수없이 잃어야 했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쟁터에서는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미군은 사망자 10만명 가운데 4만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명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트 디즈니, 존 스타인벡, 마하트마 간디, 루스벨트 대통령 등도 스페인 독감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토머스 울프는 이 시기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의 이야기를 풀어낸 걸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썼다.
이 유행병의 기원을 두고도 설왕설래했다. 독일 스파이들이 독가스를 살포했다는 소문이 퍼졌는가 하면, 바이엘 아스피린에 병균이 심어져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여기기도 했다. 공기 자체가 유독하다는 말이 돌면서 이탈리아에선 집을 밀봉해 질식사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100여년 전 대유행병 상황이 2020년 오늘날 코로나19 사태와 어이없을 정도로 닮았다”는 저자는 “스페인 독감에서 배운 것은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의료진의 헌신, 작은 행동으로 서로를 보살피는 보통 사람들의 인류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 있기에 극복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16쪽 화보로 구성한 스페인 독감 시기 사진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