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박일호의미술여행]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엘 그레코의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미술에서 매너리즘은 규범을 강조한 르네상스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16세기 중엽에 나타났다. 인체 비례를 변형시키고, 작은 머리와 길게 늘인 곡선형 인체를 강조해서 정확함보다 우아함을 표현하려 했다. 불균형적인 구성이나 어둡고 신비로운 색채를 의도적으로 강조했으며, 공간을 복잡하게 해서 그림 전체의 통일성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이 그림은 스페인의 대표적 매너리즘 화가인 엘 그레코가 톨레도의 산토 토메 교회당에 관해 그린 작품이다. 중세 시대 한 헌납자인 오르가즈 백작의 시신을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무덤 속에 매장하는 장면이다. 그림은 상부와 하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아래는 지상 세계인데, 귀족과 사제들과 오르가즈 백작이 있다. 엘 그레코가 그들의 옷과 백작의 갑옷을 화려한 색채와 풍부한 질감으로 나타내서 세속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림의 위쪽은 천상세계로 천사들, 사람들의 시선, 휘돌아가는 구름 모두 화면 가운데 정점에 있는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 뒤에서 희망의 빛이 흘러나오고, 그리스도가 양팔을 벌려 구원받은 자들을 맞이하려 한다. 위쪽과 아래쪽 사이에는 오르가즈 백작의 혼을 천상세계로 옮기는 천사가 등장해 지상 세계와 천상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엘 그레코는 등장 인물의 인체 비례를 길게 늘여 매너리즘적인 방식으로 표현했고, 무겁고 경건한 분위기를 암시하는 색조로 종교적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 했다.

매너리즘의 평가는 양면적이다. 하나는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할 때의 의미처럼 타성에 빠진 미술이라는 부정적 평가이다. 현실의 관찰을 도외시하고, 기존의 기법과 틀에 빠져 있거나 시선만을 끌기 위한 억지 왜곡으로 향했다는 점에서다. 다른 하나는 매너리즘이 르네상스와 다른 새로운 방법의 미술을 추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이다. 감성적 표현으로 정확한 묘사를 넘어 참신하고 감동적인 그림을 이뤘다는 점에서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종교적인 감동 못지않게 형식의 새로운 전환도 이룬 화가로 평가된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