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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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1인 1닭

희망이 사라진 곳에는 절망이 싹튼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절망은 여름날 잡초처럼 자라나고 있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타격 때문이다. 극단적인 선택이 줄을 잇는다. 안양 평촌에서 25년 동안 장사한 60대 노래바 주인 자매, 춘천 노래주점의 36세 주인….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사라진 캄캄한 ‘절망의 벼랑’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차’. 1980년대 초반 일본열도를 강타한 개인파산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거품이 쌓여가던 일본 경제. 금융회사는 대출 세일에 나서고, 신용카드 발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어진 개인파산 사태. 수십만명이 파산의 늪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유령’이었다. 소설 속 파산전문 변호사는 이런 말을 한다. “야반도주를 하기 전에, 죽기 전에 파산이라는 마지막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달라.” 생각할수록 애절한 말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떨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코로나19 전쟁에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 빈 가게는 거리마다 즐비하다. 서울 종로통 뒷골목부터 그렇다. 문을 닫은 텅빈 가게들. 그곳에는 임대 광고가 내걸렸다. 이젠 새삼스러운 풍경도 아니다. 문을 닫은 가게 주인의 심경은 어떨까.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절망의 벼랑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지 않을까. 개인파산 신청은 급증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13세 이상 4640만명에게 통신비 2만원씩을 뿌리기로 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통신비를 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국민이 많아서? 재난지원금을 살포하면서 승리한 4·15 총선의 달콤한 기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1인 1닭’ 비판마저 나온다. “1조원 가까운 돈으로 전 국민 치킨 파티를 하느냐.”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에서 빠진 유흥주점 주인들은 그래서 더 화가 난 모양이다. “똑같은 국민인데 왜 우리만 제외하느냐.” 그들 중 상당수도 절망한 이들이다. 빚낸 돈으로 살포하는 통신비 9300억원. 그 돈으로 자영업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자 했다면? 그 돈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사다리가 되지 않을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