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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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서 ‘경찰 개인 정보 1000건 해킹’…평화집회에도 수백 명 체포에 분노

복면을 쓴 벨라루스 경찰들이 19일(현지시간) 수도 민스크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한 여성을 들것에 옮겨 제압하고 있다. 민스크=AFP

 

벨라루스에서 26년째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해커들이 경찰 1000명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전날 열린 평화 집회에서마저 400명 가까운 집회 참가자가 체포되자 여론이 들끓면서 시위대 측에서 취한 조치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전날 오후 익명의 벨라루스 해커들은 경찰 1000명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며 “시위대에 대한 탄압이 이어질 경우 경찰 등의 신상정보를 계속 공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텔레그램에 낸 성명에서 이들은 “체포가 계속된다면 우리도 대규모의 개인정보 공개를 이어갈 것”이라며 “발라클라바(방한용 복면)를 썼다고 해도 정체를 숨길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 현장에서 공개되는 사진을 보면 시위대를 제압하는 인력들은 복면을 쓰고 있다. 벨라루스 당국은 개인정보 유출에 관여한 이들을 색출해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말인 19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는 여성들로만 조직된 민주화 집회가 열렸다. 2000여명의 여성은 집회의 상징인 벨라루스 인민공화국 국기를 흔들며 행진했다. 여성들은 흰색과 빨간색으로 된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왔고, 경찰이 다가오면 즉석에서 흰색과 빨간색의 실을 꺼내 뜨개질을 하기도 했다. 평화 시위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She4Belarus’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져 여성들의 적극적인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 집회를 벌였음에도 이날 하루에만 390명의 집회 참가자가 체포됐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1980년대부터 벨라루스에서 민주화 집회를 이끌어 온 70대 여성 니나 바긴스카야(73)도 있었다.

 

시위대 제압을 위해 경찰이 다가오자 뜨개질을 하며 평화 시위임을 어필하는 벨라루스 여성. 트위터 캡처

 

벨라루스 야권이 정권 이양을 위해 만든 ‘조정위원회’는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한 폭력이 확대되는 새 국면”이라고 비판했고, 민심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후 벨라루스 당국은 체포한 집회 참가자 대부분을 석방했다.

 

다음날에도 같은 상황은 반복됐다. 민스크 시내에서 수만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졌고, 수천명의 시민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벨라루스 대통령 관저로 행진하며 “겁쟁이들만 여자를 때린다” “꺼져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