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누워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목소리를 내서 대화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문득 우울해지면서, ‘내가 지금 외로운 건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의 한 IT(정보기술) 회사에 다니는 정모(32·여)씨는 한 달 넘게 재택근무 중이다. 처음에는 출근하지 않아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종종 무기력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밥 먹으며 수다를 떨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났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 같은 일상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됐다. 혼자 사는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정씨는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우울해하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다”면서도 갑갑하다고 토로했다. 그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이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 먹고 떠드는 일상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알게 모르게 제 스트레스를 줄여줬던 것 같아요. 요즘은 즐거운 일이 없어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코로나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례없는 재난에 일상이 뒤흔들리면서 국민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7∼8월 시민 39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정신적인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는 응답이 4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가장 힘든 점으로는 ‘여가 활동이나 여행에 제약을 받는 것’(32%)과 ‘사람들과의 교류가 제한되는 것’(26%)이 꼽혔다. ‘실업이나 소득 감소로 인한 어려움’(24%)보다도 높은 수치다.
응답자의 30%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일상적인 만남의 제약에 따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정책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측면이 있는데 정신건강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 각자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법이 있었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그런 것들이 깨져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라며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질 수 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산책을 하는 등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야외에서 신체활동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선애 서울시 서울혁신기획관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고립감 등을 겪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 차원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