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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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미래의 자원’에 역점… 본래 가치 훼손 땐 애물단지로 [심층기획 - '문화유산헌장' 첫 개장]

보존서 벗어나 생활속에 향유하도록
궁궐·왕릉 활용 확대 가장 두드러져
김치처럼 무형문화재로 거듭날 수도
얄팍한 상술과 근거 없는 복원 등으로
역사 왜곡·문화재 자체 망치기 일쑤
경주 월정교 등 ‘상상의 산물’ 비판 커

 

“문화유산은 한 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것을 다짐하면서….” ‘문화유산헌장’의 전문 중 일부로 문화재 원형의 보존, 보호를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다. “우리 유산을 알고, 찾고, 지키고, 가꾸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은 우리의 소중한 책무다.” 문화재청이 제시한 헌장 개정안 전문의 한 문구다.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는 대목에서 적극적인 활용의 의지가 분명하다.



헌장이 제정된 것은 1997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지금껏 이어졌으나 현재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여년간의 문화재를 둘러싸고 진행된 인식과 태도, 사회적 환경, 정책 등의 변화를 담겠다고 한다. 동의반복이란 인상까지 주며 보존을 강조한 현재의 헌장과 보존을 전제로 하지만 활용을 전면에 내세운 개정안은 차이가 뚜렷하다. 거칠게 말해 문화재는 외부 영향을 최대한 차단해 과거의 모습대로 지켜야 할 것에서 향유의 대상이자 미래 자원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바뀌어 왔다. 이런 양상이 문화재의 본래 가치를 훼손하거나 정체불명의 애물단지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처음 개정작업 중인 문화유산헌장

헌장은 문화재의 위상과 가치, 의미를 압축해 담은 선언이자 대원칙이다. 전문, 강령으로 구성되어 있고, 보존과 보호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개정안은 전문에서 “문화재의 정의, 유형, 가치를 서술”하고, 5개조의 강령을 통해 “보존, 활용,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다짐을” 밝혔다. 현재의 헌장에는 없는 맺음말은 “헌장 제정의 목표와 방향성을 재강조한” 부분이다.

둘 간의 내용상 차이는 지난 20여년간 달라진 문화재의 의미, 위상, 가치 등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문화재청은 “현재의 헌장은 삶의 질 중시, 기술혁명의 가속화, 세계화 등 새롭게 대두되는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지 않아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개정 추진 이유를 밝혔다.

 


◆‘미래의 자원’, 문화재 활용 전면에 나서다

가장 분명한 변화는 활용이 크게 부각된 점이다. 현재 헌장은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일” 정도로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미래의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생활 속에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등으로 강조했다.

문화재 활용의 확대는 궁궐과 왕릉에서 가장 뚜렷했다. 특히 2005년의 경복궁 경회루의 일반 개방은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궁능유적본부 나명하 본부장은 “훼손을 걱정하며 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문화재를 찾고 즐길 때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며 “경회루 이후 궁궐의 다른 전각들도 본격적으로 열었다”고 말했다. 현재 4대 궁궐에서 개방이 전혀 안 된 전각은 창덕궁의 신선원전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변화에 따라 궁궐, 왕릉을 찾는 관람객 수는 연간 약 900만명(1997년)에서 1300만명(2019년)으로 크게 늘었다.

문화재 보호, 보존 활동을 활용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도 흥미롭다. 20년이나 걸린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의 보수과정에서 작업을 위해 설치한 덧집에 관람 통로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인 게 대표적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현용 학예연구사는 “미륵사지석탑은 문화재 보수현장을 관광자원화한 초기사례”라며 “이런 시도가 좋은 결과를 낳아 20년이나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빨리 끝내자는 재촉이나 압력이 덜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김치는 어떻게 무형문화재가 되었나

개정안은 전문에서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은 우리의 소중한 책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원래의 모습과 가치를 온전하게 지키는” 걸 전제로 한 것이지만 “새롭게 해석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덕목”이라는 태도가 도드라진다.

2014년 도입된 보유자, 보유단체 없는 무형문화재 종목 지정, 2001년 시작된 등록문화재제도는 문화재의 대상, 시간을 일신했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1960년대 이래 지금까지 무형문화재 보호는 특정한 예능, 기능의 보유자, 보유단체를 정해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생활관습, 전통지식, 구비전승처럼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따로 보유자, 보유단체를 정할 수 없는 무형의 유산은 정책적 보호의 틀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2014년의 조치 이후에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아리랑, 김치담그기, 활쏘기, 해녀 등과 같은 것들이다. 보유자, 보유단체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건 원형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활용의 폭도 크다.

한국문화재재단 김광희 팀장은 “보편성이 커 보유자, 보유단체를 정하지 못해 법적, 제도적 보호체계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며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것인 만큼 소수의 예술인, 전문가 중심의 무형문화재에서 느끼는 괴리감이 없다”고 설명했다.

2001년 시작된 등록문화재제도도 대상과 시간의 폭을 크게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변화였다. 문화재라고 하면 짧아도 100년 이상은 된 아주 오래된 옛것을 흔히 떠올린다. 그러나 등록문화재는 개화기부터 6·25 전후까지의 시기에 생산된 건조물, 예술품, 유적 등을 대상으로 한다. 1호는 1928년 세워져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사용된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이다. 제도의 도입 후 지금까지 871건이 등록문화재에 올라 있다.

 


◆새로운 가야사, 계속될 수 있을까

헌장의 개정은 문화재 현장의 긍정적 변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려 하고 있고,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개정안에 드러난 원칙과 선언들을 오롯이 현실화시키는 것이야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대의 성취를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짚어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얄팍한 계산이나 조급함이 근거 없는 복원, 역사 왜곡, 문화재 자체의 훼손 등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경주시는 중장기(2014∼2020년) 종합발전계획을 세워 운영 중이다. 땅만 파면 유물, 유적이라는 ‘천년 고도’ 경주를 ‘전통과 미래가 함께하는 역사문화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황룡사 복원, 월정교·일정교 복원, 월성유적 발굴정비, 경주읍성 정비 등이 프로젝트의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보존을 위한 규제가 워낙 심해 어떻게든 문화재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경주시의 계획과 그것의 실천 중 일부는 날선 비판의 대상이 됐다. 고증자료가 부재하다시피 한 상태에서 복원을 완료한 월정교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크다. 황룡사 역시 복원을 시도하기에는 관련 자료가 크게 부족하다. 경주에 있는 문화재 단체의 한 관계자는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경주읍성의 지금까지 모습은 한마디로 가관”이라며 “관광활성화를 노린 것이겠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가야사 연구가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후 이어지고 있는 관련 연구, 문화재 정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북지역 가야유적 학술조사’를 주요 기능 중 하나로 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설치, 전북 남원의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포함한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선정, 크고 작은 가야 관련 전시 등 가야사에 대한 조사, 연구가 봇물을 이루고 인력과 재원의 집중 투자도 뚜렷하다. 특히 호남을 가야사의 영역를 포함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걱정이 크다. 고대사 전공의 한 연구자는 “전북가야를 운운하며 그것에 대단한 의미가 있는 양하는 건 아무리 곱씹어도 동의하기 힘들다”며 “지금의 정권이 끝나고도 가야에 심혈을 기울일 만큼 전북 지역에 관련 유적이 많은 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