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2일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 A(47)씨를 피격하고 시신을 불태운 사건에 대해 아직껏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침묵하는 북… “남북관계 심각한 악영향” 우려
24일 통일부는 이번 피격사건과 관련해 북측에서 연락을 받은 것도 없고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월 북한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한 간 연락선을 차단했다.
이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폭파하면서 통일부 차원에서 북측과 연락할 채널은 모두 끊겼다. 북한 매체도 지난 21일 일어난 이번 사건을 이날까지 언급하지 않은 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지난 7월 탈북민 김모씨의 ‘헤엄 월북’ 사건 때와 대조적이다. 당시 북한은 탈북민의 재입북 사실을 매체를 통해 공개하면서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높이고 개성시를 봉쇄하는 등 대대적인 조치를 취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당시에는 북한이 코로나19 등과 관련해 남측에 큰소리치고 불만을 표시할 수 있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 규범이나 도덕적으로 명분이 취약하다”며 “북한이 내부적으로 보고하고 대응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향후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적절한 해명과 사과를 내놓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는 상황은 알려져 있지만 민간인을 사살하고 불에 태운 잔인한 대응을 한 것과 관련해 국민의 반북 감정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정부의 남북교류·협력 노력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의 대북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6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코로나19와 태풍 피해 지원 등을 제안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에 한반도 종전선언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홍 실장은 “북한이 잘못을 시인하고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행동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 정부의 여러 행동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당분간은 남북관계가 굉장히 경색된 상태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전 송환 사례도 많아… 박왕자 사건처럼 출구 없이 흘러갈 수도
북한이 월북한 한국인들을 송환한 사례도 많다. 북한은 지난 2017년 10월 북한 수역을 넘어가 조업하던 남측 어선을 나포해 선원 7명을 조사한 후 다음 달 선박과 함께 돌려보냈다. 2014년에도 밀입북한 김모씨를 조사 후 남쪽에 송환했고 2013년에는 월북했던 한국민 6명을 단체로 송환했다.
민간인이 북측에 의해 사살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과 비슷하게 출구 없는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씨는 산책 도중 북측 초병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당시 북한은 “박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군 경계지역에 진입하자 초병이 정지를 요구했고 박씨가 그에 불응한 채 도주하자 발포했다”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피격 사건 진상 규명 및 사과,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으며 남북관계가 단절됐다.
특히 박씨 피살사건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씨의 사망 사실을 보고 받고도 남북 간 전면적인 대화를 제의한 국회 개원 연설을 강행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박씨 사건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하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남북이 대화와 상생의 길을 촉구하고 개성공단의 활성화도 언급한 반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 바 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