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에서 21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A(47)씨를 북한 해역에서 22일 사살하면서 남북관계는 한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들었다. 25일 북한이 통지문을 보내 유감의 뜻을 표시하면서 위기 상황은 수습됐으나, 비무장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총에 맞아 숨진 것을 두고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군은 24일 A씨의 피격 및 사망 과정에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원거리에서 직접 본 게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22일 오후 북한이 A씨를 처음 발견한 직후부터 사망 및 소각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북한군 움직임 등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이었다. 육안 관측이 불가능한 거리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군 당국이 공개하지 않는 신호정보(SIGINT)에 힘입은 바 크다.
◆“북한군 교신은 다 엿듣는다”
우리 군의 정보 분야에서 ‘SI(Special Intelligence) 첩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우리말로는 ‘특수정보’로 번역되는 SI 첩보는 북한군 통신을 감청해서 확보한 정보를 말한다.
군에서는 보안등급이 높은 기밀로 취급, 존재조차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군 당국이 24일 A씨 사망 과정을 설명하면서 정보 출처에 대해서는 함구했는데, 이는 SI 첩보에 근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수집에서 SI 첩보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북한에 대한 인적정보(HUMINT)는 거미줄처럼 이어진 북한 내 사회통제망으로 양적, 질적으로 부족하다. 미 정찰위성이나 무인정찰기에서 얻는 영상정보(IMINT)는 북한군이 위성 정찰을 회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신호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군 신호정보 수집은 777(일명 쓰리세븐)사령부가 수행한다. 777사령부는 지상 통신감청시설과 정보수집함, 백두 신호정보수집기 등을 통해 북한에서 발신되는 전자정보를 수집한다.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 근무한다.
이 부대에 대해서는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SID 투데이’ 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NSA가 조직 내 정보공유를 위해 만든 SID 투데이 문서 중 2006년 6월 22일자 1급 비밀 자료에 따르면, 777사령부는 1956년 창설 당시 200명에 불과했으나 2006년에는 3100명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미 NSA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감청기지는 2006년 기준으로 22곳. 12곳은 지상 고정식, 8곳은 이동식, 해상과 공중이 각각 1곳씩 있다. 이들 기지는 서북도서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접경지역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감청기지에서 하루에 수집되는 신호정보는 하루 7만7000분에 달한다. 53일 11시간 20분 분량에 달하는 방대한 정보가 24시간 동안 모이는 셈이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주한미군 등에 공급된다.
비밀 자료는 “2004년 5월~2006년 2월에 수집한 대북 신호정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 내 신호정보의 50%, 북한군 신호정보의 75%를 (777사령부가) 감청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4년 전 정보수집능력이 이 정도라면, 현재는 북한군 신호정보 대부분을 감청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군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것도 신호정보 수집 기회를 넓힌다는 평가다.
북한 정찰총국의 위장업체 글로콤(Glocom)이 2018년까지 취급했던 장비를 보면, C4ISR(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 감시, 정찰) 솔루션과 보안시스템, 무전기, 데이터 송수신장치는 물론 워 게임 프로그램까지 포함돼 있었다. 북한군에도 이와 유사한 체계가 구축되어 있다면 다양한 종류의 전자신호가 방출되므로 한미 정보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수집된 신호정보는 남북 대치 국면에서 위력을 드러냈다. 김진호 전 합참의장은 자서전에서 1999년 제1차 연평해전과 관련, “우리의 통신정보기관에서 당시 북한의 교신내용을 파악한 것에 따르면 북한은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0년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우리 군의 반격으로 인한 북한군 사상자 파악에도 통신감청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수집과정에서 문제점도 있다. 북한에서 휴대전화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수집되는 전자정보도 크게 늘었다. 이는 분석관이 놓치는 정보가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유사시 북한의 도발 징후를 포착하고도 분석을 하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국방부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첨단 기술을 적용해 정보분석량과 속도를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북한군, 감청 회피기술 사용…종합적 분석 중요
북한도 한미가 신호정보에 의존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감청을 피하고자 광케이블 유선 통신망을 평양과 전연지대 사이에 가설해 활용하는가 하면, 무선교신은 주파수 대역과 암호체계를 지속적으로 바꾼다, 역정보를 흘려 한미 정보당국에 혼선을 일으키려 시도한다.
신호정보 수집 담당 군인들을 맥빠지게 하는 일은 감청을 통해 확보한 정보가 국회의원이나 군 관계자에 의해 갑작스레 노출되는 것이다.
특수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수집했느냐가 중요하다. 통신감청으로 수집된 사실이 공개되면, 북한은 대책 마련에 나선다. 북한 암호 해석방법 등을 포함해 공들여 쌓은 노하우가 물거품이 된다. 이를 만회하는데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2015년 김 위원장이 미국산 세스나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사실이 공개되자 김 위원장은 세스나 탑승을 중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 정보당국은 김 위원장의 세스나 이용을 특수정보로 파악하고 김 위원장 동선 파악에 활용했으나, 이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면서 타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이 감청 자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것이 단순한 군사보안 때문이 아닌 이유다.
하지만 군과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에 대해 지나치게 비밀주의를 유지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A씨 피살 사건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도 감청능력 노출만 신경 썼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군이 A씨 피살 정황을 파악하고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하는 동안 해경은 연평도 인근에서 수색작업을 진행한 것이 드러나 군과 해경의 정보공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같은 사태를 방지하려면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개하는 기준을 명확히 설정,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신호정보와 더불어 영상정보, 인간정보 등을 융합해 특정 분야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분석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A씨 피살 당시 구체적인 정보공유 및 공개 기준을 갖춘 상태에서 신호정보 외에 무인정찰기나 원거리 영상촬영장치 등에 의한 정보수집이 가능했다면, 감청능력 노출을 우려하지 않고도 사건의 전모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해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보는 국력이다. 우리 군의 신호정보 수집능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어렵게 수집한 정보를 보호하고 첩보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비밀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정보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관계기관 및 언론 등과 공유하고, 정부 수뇌부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군사보안은 단순한 비밀주의일 뿐이다. “상황 발생 6시간 동안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감청정보자산 지키는 것에만 애를 썼다”는 비판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