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야당에 선제안한 국회 차원의 대북 규탄 결의안 채택을 사실상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야당에선 여당이 대북 규탄 결의안을 먼저 제안해놓고 이제와서 하지 않을 것처럼 애매하게 나온다며 반발하고 있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당초 밝힌대로 오는 28일 본회의서 대북 규탄 결의안 채택과 국민의힘이 요구한 긴급현안질의를 받을지 등을 두고 내부에서 논의 중이다. 민주당은 북한이 사과를 했고 청와대가 공동조사를 요구한 상황이어서 결의안 채택도 긴급현안질의도 불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따라 주말 사이 계획했던 여야 원내대표 회동 성사 여부도 불투명하다.
민주당에 따르면, 전날(25일) 오전 김영진 민주당 원내총괄수석부대표와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만나 28일 원포인트 본회의와 결의안 채택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힘이 본회의에서 북한의 피격과 시신훼손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긴급현안질의를 하겠다고 나오자, 민주당은 통일부장관,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등 국무위원을 상대로 하는 긴급현안질의에 난감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원내수석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민주당 주장이다.
여야 원내지도부간 대북 규탄 결의안을 논의하던 지난 25일 오후 청와대가 북한의 사과 통지문을 긴급 공개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신속한 사과였을 뿐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표현이 담긴 이례적 수위여서, 민주당 입장은 대북 규탄 결의안이 필요 없어졌다는 기류로 급변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뉴스1과 통화에서 "긴급현안질의는 (북한의) 사과요구, 재발방지대책 등을 위한 것인데 이미 (북한이) 사과를 표명했고 재발방지대책 마련 의사를 밝혔다"며 "그러니 긴급현안질의와 결의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추진한 대북 규탄 결의안의 목적이 이미 달성됐기에 추진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대북 규탄 결의안이 여야 합의가 될지 모르겠다"며 "상황이 달라졌으니 논의 내용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 긴급현안질의는 우리 내부적으로 사실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재차 설명했다.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긴급현안질의를 했기에 본회의에서 반복할 필요가 있겠냐는 이유도 들었다. 또한 추석연휴 직전인 28일 본회의에서 야당에 긴급현안질의라는 '공세의 장'을 깔아주는 것도 여당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부분이다. 이날 오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북측에 대해서 추가 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필요하다면 북측과의 공동조사도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기에 상황을 더 두고 보자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의 태도 변화에 국민의힘은 강력히 반발했다. 예정대로 28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법에 의거한 대정부 긴급현안질문을 실시,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자고 맞섰다.
배현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원포인트 본회의를 선제안한 민주당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며 "김정은의 유감 표명 한 마디가 국회의 소임을 방기할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또한 "국회는 우리 국민이 살해돼 불태워진 의혹을 밝힐 책무가 있다"며 "대한민국 집권여당은 발 빼지 말라. 모르쇠도 말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화형 만행 진상조사 TF' 첫 회의를 여는 한편, 북한 피격 사망 공무원 A(47)씨의 형 이래진(55)씨와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인천 해경본부를 방문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TF 회의에서 "(정부는) 북한과 통신 채널이 모두 끊겼다고 했는데 도대체 친서는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의문이 안 가신다"며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전통문과 면피성 사과로 이번 사건을 덮으려 한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자해행위가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각을 세웠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