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영향으로 ‘언택트’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며 정보와 기술로부터 소외된 노인이 뒤처지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인건비 절약은 물론 코로나19 위험을 줄이기 위해 ‘QR코드’나 ‘키오스크’ 등 스마트 기술과 기기가 속속 도입되면서 미처 적응의 기회도 없이 방치된 노인들이 젊은 세대에 뒤처지는 현상이 뚜렷하다. 디지털 격차는 역설적이게도 감염병과 범죄에 취약한 노년층을 관련 정보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외딴섬처럼 살아가는 노인이 각종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올해는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 70만명이 65세가 되면서 노인 세대에 진입한다. 향후 10년 동안 805만명이 새로 노인 세대가 된다. ‘노인 인구 폭발’이 시작됐지만, 우리 사회는 노인 디지털 격차에 대비할 준비가 부족하다. 다가오는 ‘노인의 날’(10월2일)과 ‘경로의 달’(10월)을 맞아 노인이 내몰린 디지털 소외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대안을 모색해본다.
#1. “아유 나는 그런 거 안 써. 빠른지 어떤지 몰라도 기계 쪽으로는 아예 안 가.”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28일 오후 서울역 매표창구 앞에 있던 고정수(71·가명)씨는 무인승차권 발매기 쪽을 보며 손사래를 쳤다.
고씨가 가려던 유인창구에는 10명이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6명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장년 어르신들이었다. 대기 줄을 피해 무인 발매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고씨는 일단 무인 발매기 앞까지 다가섰다. 그러나 ‘빠른 구매’와 ‘일반 구매’로 선택지가 나뉜 첫 화면을 보자마자 기계에서 물러섰다. 고씨는 “뭐가 뭔지…”라며 결국 원래 향하던 유인창구로 몸을 돌렸다.
이날 기자가 지켜본 한 시간 동안 역사 2층 중앙에 있는 15대의 승차권 자동 발매기를 이용해 기차표를 구매한 어르신은 단 두 명뿐이었다.
#2. “창구에서 기차표를 사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급할 땐 가끔 키오스크(무인 발매기)도 쓰긴 하는데 주로 앱(애플리케이션·응용소프트웨어)으로 미리 사죠.”
비슷한 시간 탑승 대기 장소에 서 있던 대학생 김현수(23)씨는 코레일 모바일 앱으로 기차표를 구매했다. 대전에 있는 부모님 집과 서울 자취방을 자주 오가는 김씨는 평소에도 늘 앱으로 기차표를 산다고 했다. 그는 “창구에서 표 사시는 어르신들과 우리 세대 사이에는 한 단계가 아니라 두 단계 이상의 격차가 있는 것 같다. 제 또래는 무인 발매기도 잘 안 쓰고 앱으로 표를 사는데 어르신들은 무인 발매기 단계까지도 못 가고 아직 대면 창구에서 주로 사시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차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노년층과 타 연령층의 ‘디지털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스마트폰, 키오스크, QR코드(디지털 정보를 표시하는 흑백의 격자무늬) 등 코로나19가 불러온 언택트(비대면) 시대의 필수품은 어르신들에게는 모두 낯선 문물일 뿐이다. 이용법을 배우기는커녕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다른 연령대와 70세 이상 노인 세대 간의 정보화 격차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진행한 ‘2019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유율은 국민 평균이 91.4%에 달하지만 70대 이상 노년층에선 38.3%에 그쳤다. 개인용컴퓨터(PC) 보유율 역시 국민 평균이 83.2%인 데 반해 70대 이상은 27.4%에 불과했다. 정보기술(IT) 기기 보유율의 격차는 정보 이용률 격차로 이어졌다. 국민 평균 인터넷 이용률은 91.8%에 달하지만 70세 이상 세대에선 38.8%만이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정보소외 문제는 독거노인이나 ‘노노(老老) 가구(노부부 등 노인 둘로 구성된 가구)’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부양가족이나 돌봐줄 젊은이 없이 노인인 배우자에게밖에 의지할 수 없는 경우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습득할 창구가 아예 없어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 768만4919명 중 1인 가구는 150만413명으로 19.5%가 독거노인이다. 노인 인구 중 독거노인 비율은 2015년 18.4%, 2016년 18.9%, 2017년 19.1%, 2018년 19.4%로 매년 느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격차가 노인들의 사회경제적 고립을 더욱 부추긴다는 점이다. 빈곤과 돌봄의 부재가 낳은 정보 소외가 다시 이들을 사회경제적으로 더욱 소외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빈곤과 디지털 격차는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 격차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미디어 활용 능력을 갖춘 고령층 중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은 59.6%지만, 미디어 활용 능력을 갖추지 못한 고령층은 91.5%가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 소외와 빈곤의 상관성에 관해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이 낮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어르신들이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더 빈곤해지는 악순환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코로나19로 언택트 기조가 유지돼 비대면 정보 취득의 중요성이 높아진 현 상황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정보 소외에 내몰린 노인들은 ‘연령주의’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연령주의는 연령을 이유로 노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보이는 것을 뜻한다. 올해의 경우 특히 코로나19 확산 분위기가 고조되던 3∼5월 일부 시민들이 감염병 예방 정보나 공공 마스크 구매 정보 등을 접하지 못한 노인들을 비난의 타깃으로 삼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화 정보에서 소외된 노인이 마스크 착용을 잊어 지탄받기도 하고, 공공 마스크 판매 정보 앱을 이용하지 못해 약국 여러 곳을 직접 다니며 마스크 판매 여부를 묻는 노인들을 민폐라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비대면 시대에 심화한 노인 디지털 소외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일부 대면을 통한 지원을 제시했다. 그는 “실내 모임 제한 규정에 맞게 소규모 프로그램을 열거나 1대 1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주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를 통한 노인 스마트 교육인 ‘스마트 돌봄 매니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남양주실버인력뱅크 김경희 주임 역시 찾아가는 스마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주임은 “독거노인 등 소외된 어르신들을 만나보면, 스마트 기기 활용 욕구가 없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 스피커 등 이용법을 배워 취미생활, 길찾기, 건강 관리에 도움을 받고 세상과도 연결되고 싶어하지만 방법을 모르실 뿐”이라며 “어르신들께 스마트 기기가 지금보다 더 많이 보급되는 게 일차적으로 중요하고 그 후엔 스마트 돌봄 매니저들이 찾아가 기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려드리는 식의 적극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지원·이종민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