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등 미국 서부해안 지역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지난 8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 초대형 산불은 한 달 넘게 이어지며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미국 서부 전역에서 최소 36명이 사망했고 지금까지 약 2만234㎢ 이상의 면적이 불타버렸다.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은 역대 최악이다. 캘리포니아주 소방국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7900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고 서울시 면적의 24배에 달하는 1만4569㎢가 잿더미로 변했다. 전문가들은 잦은 대규모 산불이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산불과 홍수 등 급격한 환경 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기후 난민’ 문제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정치·종교적 갈등과 분쟁뿐 아니라 기후위기 또한 우리 눈앞에 다가온 문제임을 직면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50년에는 전 세계 12억명이 생태학적 위협으로 난민이 될 수도”
2050년에는 기후위기와 극단적 기상이상 현상이 이어지면서 전 세계 12억명 이상이 기후 난민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29일 비영리 독립 싱크탱크인 경제평화연구소(IEP)가 발간한 ‘생태학적 위협 기록부(ETR) 2020’에 따르면 2050년에는 조사에 포함된 157개국 가운데 141개국이 최소 1개의 생태학적 위협에 노출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중 19개 국가는 최소 4개 이상의 생태학적 위협에 노출될 것으로 우려된다. 생태적 위협 건수가 가장 많은 19개 국가의 인구를 합하면 21억명이며, 이는 세계 인구 4명 중 1명에 해당한다.
연구소는 유엔 등 국제기구로부터 받은 물과 식량부족, 인구증가율 등 ‘자원적 위협’ 요소와 홍수와 태풍, 가뭄, 이상기온, 해수면 상승 등 ‘자연재해적 위협’ 자료를 바탕으로 통합적인 지수인 ‘생태학적 위협’ 현황을 만들었다.
연구소는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 발생 수가 지난 40년간 3배 이상 급격히 늘어났고, 동시에 24억명이 현재 물부족을 겪고 있다”면서 “2050년에는 전 세계 7억4000만명이 자원위협에 처하고, 10억명 이상이 자연재해적 위협에 처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중복인구를 제외하면 약 12억명 이상의 생태학적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와 남아시아, 중동 및 북아프리카가 가장 많은 생태적 위협에 당면해 있다. 국가별로 보면 생태적 위협 요소가 가장 많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으로 6개를 기록했고, 모잠비크와 나미비아가 5개였다. 이밖에 인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 4개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이 정치·종교적 분쟁으로 인한 난민보다 3배 많아”
보고서는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자연재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역시 생태위협 건수 자체는 적지만, 산불과 홍수 등 자연재해적 위협 측면에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구소는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자연재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지구촌이 점점 뜨거워질수록 가뭄의 위험도 심화되고 태풍의 강도도 거세진다”면서 “극단적인 기상현상과 자연재해가 일상화되는 상황 속에서 물부족이나 식량부족과 같은 자원적 문제도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 발생 건수는 1960년 39건에서 지난해 396건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자연재해로 치른 비용 역시 1980년대 500억달러(58조1600억원)에서 지난 10년간은 연간 2000억달러(232조6400억원)로 폭증했다. 지난해에만 자연재해 문제로 발생한 난민은 2490만명으로 무력분쟁으로 발생한 난민인 860만명 대비 3배 가까이 많았다.
이렇듯 난민을 양산하는 재해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재해는 홍수다. 지난 30년간 발생한 재해 유형 중 홍수는 41.5%(4119건)다. 이어 태풍이 29.6%(2942건)를 기록해 태풍과 홍수가 전체 재해 유형의 71%를 차지했다. 이밖에 극단적 기온과 가뭄, 산불도 각각 5.3%(524건)와 4.8%(475건), 3.4%(341건)였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과 중국, 인도, 필리핀이 지난 30년간 자연재해의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태풍 444건과 홍수 145건, 산불 81건 등 총 704건이 발생했다. 이들 나라는 평균적으로 연간 10개 이상의 자연재해를 경험한 셈이다.
스티브 킬레리아 IEP 회장은 “생태위협과 기후변화는 세계평화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대규모 인구이동은 난민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국제적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솟는 해수면… ‘투발루·마셜제도·몰디브’ 사라질 위기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감소하고 덩달아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51차 총회에서 2100년 지구 평균 바닷물 높이가 2005년 대비 1.1m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수면은 조금만 높아져도 인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2100년까지 해수면이 0.5m만 높아져도 인도 뭄바이, 중국 상하이 등 세계 주요 해안도시들이 침수된다. 또 다른 연구는 2100년 해수면이 2.1m까지 상승해 2억명이 고향을 잃고 지구촌을 떠돌아다녀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장 대표적인 지구온난화 피해 국가는 태평양의 섬나라인 투발루와 마셜제도, 몰디브 등이다. 이들 국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갖고 있지만 해발고도가 낮고 평평한 지형 탓에 나라 전체가 물에 잠길 위험에 있다.
하와이와 호주 사이에 위치한 1156개의 산호섬으로 이뤄진 마셜제도는 2030년에 국토 전체가 바다에 잠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진 몰디브는 인도양 남쪽에 위치한 산호섬이다. 이곳 역시 평균 해발고도가 2m로, 2100년쯤에는 완전히 잠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지역에 위치한 투발루도 지구온난화의 피해국이다. 투발루는 1년에 약 5㎜씩 국토가 바다에 잠기고 있다. 실제로 9개의 섬 중 2개는 이미 가라앉았다. 남태평양의 33개 산호섬에서 약 11만명이 살고 있는 키리바시공화국 역시 같은 상황이다.
유엔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키리바시, 투발루, 마셜제도와 협력해 지난 8일 태평양에서 국경 간 기후 안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