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온라인으로 팔고 있는 조모(31)씨는 지난달 쿠팡으로부터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쿠팡은 조씨에게 해당 제품을 어디서 어떻게 공급받았는지 “유통경로를 소명하라”고 메일을 보냈다. 쿠팡은 소명이 될 때까지 물건을 사이트에서 안 보이게 했다. 조씨는 “수년간 온라인을 통해 사업을 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유통경로는 ‘영업기밀’인데 이걸 내놓으라고 하는 건 ‘갑질’”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조씨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거래명세서를 쿠팡에 보냈다. 며칠 뒤 조씨는 소명이 됐다는 연락을 받고 쿠팡에서 물건 판매를 재개했다.
화장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황모(60)씨는 지난달 온라인 쇼핑 사이트 쿠팡으로부터 제휴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쿠팡 측은 마케팅을 지원해주겠다고 설명하면서 황씨를 설득했다. 폼클렌징을 유통하는 황씨는 한동안 온라인 판매에 소극적이었지만 대형 쇼핑업체인 쿠팡의 연락을 받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허락했다. 황씨는 곧바로 평소 팔던 폼클렌징을 쿠팡에 올렸다. 그런데 곧바로 쿠팡 측으로부터 “유통경로를 소명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황씨에 따르면 쿠팡은 황씨가 소명할 때까지 쿠팡 사이트에서 물건을 내렸다. 황씨는 “다른 소셜커머스에서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지만 유통경로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물건을 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쿠팡이 알아서 다시 물건을 올려놨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시장 규모가 더욱 확대되는 가운데 대형 플랫폼의 ‘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일보가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소속 이규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11월부터 신규입점 업체들에게 유통경로 소명 확인서를 받고 있다. 중간유통상에게는 거래명세서 등의 제출을 요구하고 명세서를 제출할 때까지 해당 입점업체의 상품을 쇼핑몰에서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9월23일 기준)까지 반려된 건수는 3만7483건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승인된 건수는 1만1281건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쿠팡의 허락을 받지 못하는 동안 소상공인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쿠팡에 입점한 중소상공인들은 쿠팡이 애초 계약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은 유통경로 소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간유통업으로 입점했던 업체들은 쿠팡이 궁극적으로 생산업체와 직거래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한 입점업체 대표는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에 등록된 상품을 직접 매입해 물류창고에 보관하다가 소비자가 구매하면 다음 날 집앞까지 배달한다”며 “온라인 쇼핑 플랫폼 국내 1위인 네이버도 이런 식으로 ‘갑질’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입법예고했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이 입점업체에 ‘갑질’을 하면 법 위반액의 두 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물게 하는 안을 담았다.
쿠팡은 이 의원 측에 “식품, 화장품, 세제, 출산·유아 용품과 명품·스포츠 브랜드 상품에 유통경로를 확인하고 있다”면서 “판매자가 정상 유통경로로 상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지 확인해 신뢰성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검증받은 판매자만이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심사하는 절차”라고 해명했다. 이 의원은 “쿠팡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영세판매자들에게 영업기밀로 볼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며 “국정감사에서 거대 온라인플랫폼 사업자의 소상공인 갑질 문제를 다루겠다”고 강조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