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입원하고, 백악관과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이 무더기로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확진자에 노출돼 미 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속한 업무 복귀 의사를 밝혔으나 그가 언제 백악관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입원 중인 월터리드 군 병원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여기 왔을 때 몸이 안 좋다고 느꼈으나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직접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병원으로 이동하기 전인 2일 백악관에서 호흡에 문제가 있었고 혈중 산소 수치가 떨어져 산소호흡기를 착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그의 상태에 대해 백악관에서 엇갈린 발언이 나오는 등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치료를 담당하는 숀 콘리 대통령 주치의 등 의료진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상태가 아주 좋고, 호전됐다”면서 “의료진은 그의 활력징후(vital sign)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또 24시간 동안 열이 없었으며 호흡에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콘리 주치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산소호흡기를 착용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제와 오늘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했으나, 산소호흡기 착용 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앞서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에게 보낸 문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증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의 두 번째 투약을 마쳤다면서 “오후 시간 대부분을 업무 수행에 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치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기자들에게 “지난 24시간 동안 활력징후가 아주 우려스러웠고, 향후 48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의료진과는 엇갈리게 그의 병세를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메도스 실장의 발언에 격분했으며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4분 분량의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려 건강 이상 우려를 불식하려 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병세는 7∼10일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는 향후 2주 이상 대통령의 선거 유세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후보의 부재 속에 선거 운동을 총괄 지휘해야 할 빌 스테피언 선거대책본부장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선 출마를 포기하면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새 후보를 선출해야 하는데, 로나 맥대니얼 RNC 위원장마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미 의회에서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상·하 의원들이 속출하면서 정상적인 의회 운영이 어렵게 됐다.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오는 19일까지 2주 동안 임시 휴회를 할 것이라고 3일 밝혔다. 매코널 대표는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 절차를 11·3 대선 전에 마치려는 당초 일정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초 12일 시작될 예정이었던 상원 법사위의 인사청문회가 19일 이후로 연기됐고, 법사위 소속 공화당 의원 2명과 론 존슨 국토안보위원장 등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상원 의원 중 추가 확진자가 나오면 11·3 대선전 인준안 처리는 어려울 수 있다.
한편,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전 선임고문과 호프 힉스 백악관 선임고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가운데, 이날 니콜라스 루나 백악관 대통령 수행비서도 확진자 명단에 추가됐다. 지난달 29일 첫 대선 TV토론을 대비해 조언자로 나선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동지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도 이날 병원에 입원했다.
◆폼페이오, 일본만 가고 한국은 방문 취소… ‘옥토버 서프라이즈’ 기대감 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여파로 이번주 예정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방한이 연기되면서 10월 중 북·미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옥토버 서프라이즈’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의 아시아 방문 업데이트’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 도쿄를 4∼6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일본 일정을 마치고 7일 몽골을 방문한 뒤 같은 날 한국을 방문하는 아시아 순방 일정을 단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의 해외 출장에도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외교부도 4일 “정부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연기된 점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며, 조속한 시일 내 다시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고 방한 연기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이 북측과 접촉하고 이달 중 북·미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옥토버 서프라이즈’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졌다. 당장 코로나19라는 급한 불이 떨어진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는 우선순위에 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미 외교당국은 미국의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폼페이오 장관 방한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고령과 비만으로 코로나19 고위험군인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언제 호전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미국 대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일정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국기연·정재영 특파원·백소용 기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