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됐다 NLL(북방한계선)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의 고등학생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저와 엄마, 동생이 삶을 비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아빠의 명예를 돌려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 편지에서 이씨의 아들은 정부가 발표한 월북설을 정면 반박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5일 오후 이씨의 친형 이래진(55)씨가 언론에 공개한 고등학교 2학년 이모군의 자필편지에는 “(아빠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통화를 했고, 동생에게는 며칠 후 집에 오겠다며 화상 통화까지 했다”며 “이런 아빠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매스컴과 기사에선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연일 화젯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군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동생과 저와 엄마는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한 가정의 가장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몰락시킬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군의 여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한다. 이씨는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녀를 끔찍히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이군은 또 편지에서 “아빠는 늦게 공무원으로 임용돼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던 만큼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며 “제가 다니는 학교에 와서 직업소개를 할 정도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고 서해어업관리단 표창장, 해수부 장관 표창장, 인명구조에 도움을 줘서 받은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표창장까지 제 눈으로 직접 봤고 이런 아빠처럼 저 또한 국가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현재 준비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누구보다 아빠가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빠는) 직업 특성상 집에 한 달에 두 번밖에 못 왔지만 늦게 생긴 동생을 너무나 예뻐했고 저희에겐 누구보다 가정적인 아빠였다”고 아버지를 회상했다.
정부가 이씨의 월북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이군은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저희 아빠가, 180㎝의 키에 68㎏밖에 되지 않는 마른 체격의 아빠가 38㎞의 거리를, 그것도 조류를 거슬러 갔다는 것이 진정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며 “본인만 알 수 있는 신상정보를 북에서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총을 들고 있는 북한군이 이름과 고향 등의 인적사항을 묻는데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씨의 신상정보는 정부가 밝힌 월북설의 근거 중 하나다. 이군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는데 나라에선 설득력 없는 이유만을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군은 “대통령께 묻고 싶다”며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주인공이 대통령의 자녀 혹은 손자라고 해도 지금처럼 하실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왜 거기까지 갔으며, 국가는 그 시간에 아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왜 아빠를 구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고 적었다. 이군은 “아빠는 평범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치매로 아무 것도 모르고 계신 노모의 아들이었다”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광복절 행사, 3·1절 행사 참여 등에서 아빠의 애국심도 봤다”고 덧붙였다. 이씨가 마트에서 홍시를 사서 나오다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홍시를 내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편지 말미에 이군은 “어린 동생은 아빠가 해외로 출장가신 줄 알고 있다”며 “(아빠가) ‘며칠 후 집에 가면 선물을 사준다’고 했기에 아빠가 오기만 기다리며 매일 밤 아빠 사진을 손에 꼭 쥐고 잠든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동생을 봐야 하는 저와 엄마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군은 “대한민국 공무원이자 보호 받아야 할 국민인 아빠가 나라의 잘못으로 오랜 시간 차디찬 바다 속에서 고통 받다가 사살 당해 불에 태워져 버려졌다”며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현 상황을 누가 만들었으며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아빠를 지키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군은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아빠의 명예를 돌려주시고 하루 빨리 아빠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달 21일 오전 11시30분쯤 소연평도 남방 2㎞ 해상의 어업지도선에서 이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씨는 이튿날 오후 북측 해상에서 기진맥진한 채 표류하는 모습으로 발견됐는데, 북한군이 이씨에게 총격을 가한 뒤 기름을 붓고 불태우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군당국은 설명했다. 우리 정보당국은 첩보 등을 토대로 이씨가 자진월북을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씨의 가족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 정부 발표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