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잠적했던 조성길(사진)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남한 망명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의 주장에 따르면 2018년 11월 로마에서 잠적했던 조 전 대사대리는 지난해 7월 국내로 입국해 정착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7일 언론 등을 통해 내용이 보도된 뒤에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정부가 신중모드를 취한 데는 조 전 대사대리의 요청과 신변안전 문제, 북한 엘리트의 국내 입국이라는 민감한 사안이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전 대사대리는 이탈리아에서 근무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요트와 와인 등 사치품을 공급하는 일을 총괄한 실무 책임자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로마에 있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본부를 통해 북한의 식량을 조달하는 역할도 담당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지도부가 민감해할 만한 분야를 담당했던 그의 탈북에 북한이 비난을 쏟아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2016년 망명한 태영호 의원(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을 대상으로 범죄자 취급을 하며 ‘인간 쓰레기’ 등의 맹비난을 가했다.
이날 미국의소리(VOA)는 북한 전직 외교관인 A씨가 “김정은이 상당히 격노했을 것”이라며 “향후 미북 회담을 의식해 국제적으로 크게 떠들지는 않겠지만, 해외 파견 외교관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훨씬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탈북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온 지 한참 지난 데다 지금까지 공개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 북한이 이 문제를 크게 부각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작지 않다. 조 전 대사대리가 공석인 대사직을 임시 수행하긴 했지만 최고위급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1급 서기관이란 점도 파장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을 낳는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공무원 사살 사건으로 국제여론에서 수세에 몰리면 범죄자(조 전 대사대리)를 인도하라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며 “다만 북한도 망명 문제를 키워서 좋을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철 지난 망명이고, 당 창건 기념식 등 내치에 집중하고 있어서 남북관계에 영향 미칠 가능성은 낮다”며 “인터넷 선전매체를 통해 짚고 넘어가는 수준의 우회적 비판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매체는 이날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과 관련한 언급 없이 오는 10일 당 창건 75주년 기념행사를 선전하며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주력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는 건물 벽면에 대형 화상을 펼치는 조명축전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우표박물관에서는 ‘위대한 향도, 백전백승의 75년’을 주제로 우표 1000여종을 전시하는 전람회가 개최됐고, 앞서 당창건 기념 국가미술전람회와 중앙산업미술전시회도 열렸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