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전시회를 준비해오면서 그림에 대한 생각들이 이처럼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온 적은 없었다.”
화가 고영종은 “항상 생각을 거듭한 끝에 모아진 생각들을 간추리면서 집중했는데, 이번만큼은 그리되질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흑백으로 여백 작업을 진행하는 중에 갑자기 청색이 간섭하고 나서더니, 어느 순간 금색과 은색도 그림 속에 끼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림이 생각을 따라잡질 못하고, 생각은 이미 그림을 멀찌감치 던져놓고 저만치 가버린 뒤였다.
그렇다고 그림들이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그 안의 어느 부분에선가 토해낸 욕구들이고, 죄다 그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서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고 나온 그대로 그냥 모아 놓았다.
비 온 뒤 느닷없이 쑥쑥 솟아나는 죽순처럼, 올여름 많은 비가 그의 내면에 뜬금없는 죽순들을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전시회 타이틀을 ‘우후(雨後), After Rain’으로 내걸었다.
어떤 것들은 뼈대만 남은 흑백의 담백함으로 솟아나고, 어떤 것들은 그 흑백에 금속의 생경함이 다시 묻어나며 이리저리 뒤틀리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번져나온다. 그래도 모아 놓고 보니 다 그의 분신들이다.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갤러리인사아트에 가면 작가가 능숙하게 펼쳐낸, 더없이 건방질 수 있는 인간과 그 인간들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