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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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시, 도심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日 정부 압박 통했나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소녀상 설치는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 / 앞서 日 관방 장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 소녀상 철거 요청
지난 25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지나가던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독일 수도 베를린 당국이 도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철거를 명령했다. 

 

베를린 미테구(區)는 지난 7일(현지시간)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 오는 14일까지 철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또 자진 철거를 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을 하고 비용을 협의회에 청구하겠다고 했다.

 

미테구는 철거를 명령한 이유와 관련해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문을 설치해 독일과 일본 간 관계가 긴장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전쟁 시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상 설치에 동의했는데, 비문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녀상의 비문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데려갔고, 이런 전쟁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설명이 담겨있다.

 

미테구는 또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며 “일방적인 공공장소의 도구화를 거부한다”고도 했다.

 

앞서 일본 정부의 대변인 격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 장관은 지난달 29일 소녀상 설치에 대해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철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 장관도 지난 1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 장관과의 통화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과거 사과에 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 브리핑에서 “소녀상 설치는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이라며 “이에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소녀상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추모 교육을 위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한 조형물”이라며 “이것을 인위적으로 철거하고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일본 스스로 밝힌 바 있는 책임 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도 역행하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로서는 관련 사항을 주시해 나가면서 적절한 대응을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코리아협의회 측은 대화를 통해 미테구를 설득하는 한편 기자회견과 집회를 연다는 방침이다..

 

협의회에 따르면 현지에서 연대해온 50여개 시민단체와 협력해 대응할 계획이며, 아직 법률 자문을 받지 못했으나 철거를 막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 계좌로 모금도 시작할 계획이다.

 

앞서 협의회는 지난 7월 미테구청으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아 지난달 말 미테구의 비르켄 거리와 브레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설치했다. 독일에서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공공장소에 세워진 것은 처음이다.

 

소녀상의 설치 기한은 1년으로, 심사를 통해 연장할 수도 있다는 게 협의회 측 설명이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