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준비체제를 조기 가동하기로 한 가운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의 계절을 앞당기자 선거에 나갈 후보군도 몸풀기에 나서고 있다. 보수야권의 일부 유력 대권주자들은 물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중량감 있는 원외 인사들도 선거에 영향력을 미칠 태세다.
뉴시스와 국민의힘에 따르면 당 지도부는 12일부로 내년 재보궐선거 대비 경선 준비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체계적인 선거 준비에 돌입한다. 재보궐 선거에 나갈 '선수'가 정해지면 자연스레 체급이 높은 대권 후보도 가르마를 타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통상 선거에선 여당이 먼저 출마 후보를 확정지은 다음 야당이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 전략을 펼치는 데 비해,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재보궐 선거 기획단을 조기에 띄우기로 해 서울·부산시장 선거 후보는 늦어도 연말에는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관전 포인트는 김 위원장이 재보궐 선거에 나갈 기대주로 누구를 지명할 것인가다.
국민의힘 복수의 인사에 따르면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로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낙점한 인사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당의 한 핵심 인사는 "김 위원장이 추석 연휴기간 거의 집에서 쉬지 않았다"며 "누구를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러 다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차기 대선이나 재보궐 선거에 세울 인물을 직접 접촉하고 일종의 사전 면접을 본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지난 8일 김무성 전 대표 등이 주축이 된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마포포럼)'에 참석해 일종의 공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김 위원장은 차기 대선이나 시장 후보로 '인물의 참신함'을 중시하고 있다. 재보궐 선거에서도 특히 초선 의원들에게 서울·부산 시장 선거 출마를 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역 의원이 차출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으나, 김무성 전 대표는 현역의원 차출에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 의석수가 103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상당수 의원들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재판 결과에 따라 100석 마지노선이 흔들릴 수 있는 이 시점에 현역을 재보궐 선거로 내보내는 전략은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도 김 전 대표의 생각과 큰 틀에선 일치한다. 김 위원장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초선 의원들도 대부분 재보궐 선거를 기피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내년에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전임자의 잔여임기만 채우고 1년 후에 다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회의원직을 포기하면서까지 재보궐 출마를 저울질하기에는 이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김 전 대표의 충고를 공천 전략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아직은 시장 후보가 누가 될지 모르지 않나. 현역이 나가면 의원 선거를 새로 해야 하니 (원외에서)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지만 현역 초선 출마는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차기 대권주자에 관해선 "앞으로 대권에 관심 있는 당내 분들이 차례차례 나타날 것"이라며 "원희룡 지사라든지 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이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혀서 자연스레 대권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이전까지 당 내 잠룡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었다. 직접적인 평가는 자제하면서도 사실상 거부감을 드러내는 뉘앙스를 풍겨 평가절하하곤 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당 내에서 대권 주자가 나올 것이라고 언급하자, 외부에서 인물을 찾는 대신 당내에서 후보를 골라 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전략이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된다.
차기 대선을 1년반 가량 앞둔 야권에는 눈에 띄는 주자가 없다는 평가 속에서도 잠룡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원희룡 지사는 최근 김 위원장과 비공개 회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단순히 추석 명절 인사치레보다는 대선 전략이나 후보 선정 절차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4·15 총선 후 두문불출하다시피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유 전 의원은 옛 바른정당 당사가 위치헀던 여의도 한 건물에 사무실 입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대선캠프를 가동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유 전 의원은 총선 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주변 측근들을 챙기면서 입방아에 휘말리지 않도록 각별히 입조심을 당부했다는 말도 들려온다. 대선가도에 방해가 되는 잡음을 사전 제거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교안 전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도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과 만찬회동을 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걸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차기 대선이나 시장 선거는 아니지만 지역구 재보궐 선거에 의욕을 보이는 원외인사들도 있다. 지난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했던 한 원외인사는 당원협의회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재보궐 선거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영남의 한 원외인사도 자신의 지역구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처벌을 받을 확률이 높다"며 재보궐 선거 준비를 고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위원장은 당에서 결정하는 임명직으로, 각 조직위원장은 지역 당원협의회에서 당협위원장 선출 과정을 거쳐 당협위원장직을 맡는다. 당협위원장은 총선에서 유력한 공천 대상자로 분류될 뿐만 아니라 기초의원 후보 추천 권한이나 전국위원회와 같은 당의 공식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황 전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여전히 조직위원장직을 유지한 사실이 알려지자, 정계 복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 재보궐 선거에 당 외곽에서 얼마나 목소리를 낼지도 관심이다. 현재로서는 마포포럼과 하우스(how’s)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마포포럼은 국민의힘 출신 원외인사로 구성된 당 외곽세력으로 김무성 전 대표와 강석호 전 의원, 김성태 전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 전 대표가 재보궐 선거전략과 관련해 김종인 위원장에게 일종의 '훈수'를 두자, 마포포럼이 원외 구심점 노릇을 하며 당의 선거 준비에도 입김을 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유의동 의원과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 이혜훈 전 의원, 오신환 전 의원, 홍철호 전 의원 등 유승민계 인사들의 참여가 두드러진 하우스의 역할도 관심을 끈다. 하우스는 협동조합형 정치카페지만, 정치권에서는 '유승민의 대선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