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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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융교육 받은 취약층, 안 받은 사람보다 합리적 금융생활”

서금원·KDI, 교육효과 조사
대출 적고 지출도 계획적으로
불법사금융 이용 비율은 낮고
예적금·노후대비 비율은 높아
“정부 지원시 교육 의무화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육시설에서 생활 중인 박모(17)군은 내년이면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보호종료 청소년이다. 흔히 ‘고아’라 불리는 이들은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지원금 500만원을 받고 차디찬 사회로 나선다. 제대로 된 금전관리 경험이 없다 보니 사회에 나가 금융사기를 당하기 일쑤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이들을 위해 유경험자를 초빙해 신용관리의 필요성 등을 알려주며 금융교육을 실시 중이다. 박군은 “(교육을 통해) 신용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제도와 금융상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정책서민금융 이용자 중 금융교육 수강자가 비수강자에 비해 재무적으로 훨씬 합리적인 금융생활을 했다. 대출도 상대적으로 적게 하고, 빌린 돈의 규모도 크지 않다 보니 ‘과도한 부채’에 시달릴 가능성이 작았다. 추후 대부업이나 불법사금융에 손을 벌리는 비율도 낮았다. 금융교육의 효과성이 입증되면서 취약계층 지원정책에 금융교육이 의무적으로 연계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3일 서민금융진흥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와 함께 진행한 ‘금융교육 효과성 조사’에서 이런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부터 8월 말까지 넉달간 진행됐으며 정책서민금융 이용자 1036명이 참여했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책서민금융 이용 시 금융교육 수강자가 미수강자에 비해 재무적으로 보다 합리적인 금융생활을 영위했다. 우선 수강자(75.9%)는 미수강자(97.7%)에 비해 대출한 비율이 20%포인트가량 낮았다. 대출을 받더라도 빌린 금액이 수강자가 미수강자보다 적었다. 금융교육을 수강한 대출자는 43.2%가 2000만원 이하를 빌렸는데, 미수강 대출자는 25.9%만이 2000만원 이하를 빌렸다.

 

대출을 덜 받다 보니 과도한 부채에 시달릴 위험도 작았다. 금융생활에서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금융교육 미수강자 중 절반이 넘는 50.9%가 ‘과도한 부채’를 꼽았다. 금융교육 수강자는 26%만 ‘과도한 부채’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봤다.

교육을 받은 이들은 지출도 계획적으로 실시했다. 금융교육 수강자 중 소득 대비 지출이 과다한 비율은 43.1%로 미수강자(55.5%)에 비해 12.4%포인트 낮았다. 반면, 예·적금 보유 비율과 미래·노후 대비 비율은 수강자가 미수강자보다 각 13.1%포인트, 6%포인트 높았다.

 

금융교육 수강자들은 미수강자보다 시중은행의 대출상품을 더 많이 이용했다. 수강자의 제1금융권 대출 이용은 80.1%로 미수강자(71.9%)에 비해 8.2%포인트 높았고, 카드사·캐피탈 대출과 대부업·불법사금융 이용 비중은 각각 32%, 4.1%를 기록해 미수강자 대비 7.9%포인트, 6.9%포인트 적었다. 연 20% 이상의 고금리 채무를 보유한 비중도 수강자(35%)가 미수강자(46.2%)보다 적었다.

 

금융교육 수강자가 미수강자에 비해 합리적 금융생활을 영위하는 건 금융교육 시 재무상태 확인, 불필요한 지출 줄이기 등 수강자에게 꼭 필요한 내용 위주로 교육이 이뤄져서다. 수강자와 미수강자의 금융생활에 명확한 차이가 나타나자 정책서민금융 이용 시 금융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금원은 “정부 지원정책이 금융·신용 경색의 일시적 해소가 아닌 장기효과 창출을 지원할 수 있으려면 지원 단계에서부터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며 “금융교육 효과성을 근거로 취약계층 지원정책과 금융교육 연계 의무화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