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주간지에 한국의 불매운동이 끝날 조짐을 보인다는 주장이 게재됐다.
기고자는 지난해 7월 불매운동 초기 당시 “한국에서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엉뚱한 주장으로 역풍을 맞은 유니클로의 점포 개점과 토요타 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 등의 판매량이 늘었다는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과 다른 건 아니지만 불매운동 전과 비교하면 매체가 주장한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되레 한국이 절대적 열세를 보이는 콘솔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 등을 거론했다면 이같은 주장에 일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앞서 도쿄신문은 “수출규제로 정작 피해 입은 건 일본 기업”이라며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한때) 공급 불확실성이 높아져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업계 세계 최대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반도체 생산에 지장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일본 주간지 뉴스세븐포스트에는 유니클로가 발표한 3분기 결산 요약보고서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7일 발표한 수입차 판매 통계를 근거로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주장이 게재됐다.
매체는 “유니클로의 한국 등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내 판매수익이 크게 감소해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면서도 “올해 4월부터 총 4개 점포를 신규 출점해 회복 조짐을 간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업이익은 줄었는데 신규 점포 4곳이 새로 출점했으니 회복의 조짐이 보인다는 건데 한국 유니클로는 불매 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서울 강남점 등 20여 곳의 매장을 폐점했다. 또 2018년 국내 시장에 진출한 자매 브랜드 지유(GU) 판매도 중단된 상태다.
15일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일본 기업 패스트리테일링이 발표한 2020년 회계연도(2019년 9월~2020년 8월) 연결 재무제표 중 해외사업부문의 매출은 8439억엔(약 9조1900억원)으로 17.7% 줄고, 영업이익이 502억엔(약 5466억원)으로 63.8% 감소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임시휴업과 외출 자제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매출과 이익이 크게 줄었고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158억원(17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가별 실적은 밝히지 않았지만 국내 20여 곳의 매장이 판매 부진 등으로 폐점한 것을 고려해 보면 한국에서 큰 적자를 면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다수 언론은 수백억대 적자를 예상했다.
그럼 매체가 주장한 일본 완성차 판매는 어떨까?
지난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발표한 수입차 판매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자동차 5개 업체의 자동차 신규등록 대수는 1458대로 전년보다 32.2% 늘었고 전월과 비교해 3.2% 증가했다. 이 가운데 렉서스와 도요타, 혼다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매체가 엉뚱한 주장을 한 건 아니지만 불매운동 이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지난해 9월 일본차 판매량은 총 1103대로 2009년 8월(973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불매운동 직전인 지난해 5월 일본차 5개사 브랜드의 판매량이 4415대였던 점을 보면 일본차 판매가 여전히 부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닛산자동차의 경우 불매운동의 철퇴를 맞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일본 완성차 판매 증가는 업계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일부 회복세를 보였는데 신차 교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오일 평생 무료 교환, 수백만원에 이르는 대대적인 할인 공세 등이 일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었다.
이 밖에도 SK머티리얼즈가 순도 99.999%의 초고순도 불화수소가스 양산을 시작하는 등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가 이뤄졌다.
이와 관련 도쿄신문은 한국 기업들이 수출 규제 강화에 대응해 부품·소재 등의 일본 의존도를 줄이고 주요 3품목은 물론 그 밖의 다른 소재까지 일본 외 다른 국가로부터 공급받는 사례가 나오는 등 수출 규제가 역으로 일본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편의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일본 맥주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자취를 감춘 상태다.
국내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재고 소진 후 대부분 매장에서 일본 맥주를 진열하지 않는다”며 “다른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 등도 비슷한 상황인 거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부산에서 지난 1년간 일본행 하늘길과 뱃길 이용객은 2018∼2019년 같은 기간 대비 무려 74%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고 항공편 이용 역시 감소했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초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로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일본 여행은 ‘0’에 가깝게 됐다.
◆대체 불가한 제품 한해 ‘선택적 불매운동’
다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일본 매체 주장에 일부 설득력이 있는 분야가 있다. 시장 자체가 전무한 콘솔 게임기와 콘솔 게임기 소프트웨어(이하 게임)이 대표적이다.
일본 게임기,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닌텐도의 경우 올해 상반기 발매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소프트가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 등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매진 사태가 벌어졌다.
발매 초기인 지난 4월 2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신도림 테크노마트 앞에는 게임기와 게임 ‘추첨식 구매 응모’에 수많은 시민이 몰려들었다.
또 온라인 거래도 활발해 중고거래사이트 등에는 웃돈을 얹어 기기를 구매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금액은 차이가 있지만 정상가보다 최대 20만원 정도 더 비싸게 팔려나갔다.
그런가 하면 다음 달 출시를 앞둔 일본 소니사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5’의 경우 일부 판매처의 3차 구매예약이 마감됐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은 PC와 스마트폰 게임 보급 및 이용은 활발한 반면 콘솔 게임 시장은 사실상 없다시피 해 대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일본산 게임기와 게임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 바람이 불 당시 일본 재계와 정치권 일부 극우 언론 및 우파들은 ‘냄비근성’을 운운하며 얼마 가지 못해 백기를 들 것이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불매운동 1년이 지난 지금 국내 매장 철수를 비롯해 대규모 적자, 판매중단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불매운동 실패를 바란 듯 보이지만 그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