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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업자들 ‘비톡방’서 일일시세 공유… 사실상 가격 담합 [‘金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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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으로 드러난 도매상의 횡포
협회 운영 단톡방 도매가 파일 올라와
어떤 기준으로 가격 책정되는지는 몰라
세금 안내는‘뒷금’ 시세… 시장가 이중성
탈세 관행… 귀금속 부가세 거의 안들어와

금 시장에 만연한 ‘뒷금’ 거래는 결국 국고를 갉아먹고, 누군가는 부당이득을 취하는 구조다. 은밀해야 할 뒷금 거래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금 거래업자 수백명이 가입된 단체 대화방에서는 고금을 사들일 때 금액과 팔 때 금액의 기준을 매일 공유하고 있었다.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자 업자끼리 출혈경쟁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업자들의 담합 구조에서 소비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취재팀은 지난 한 달간 금거래업자 750명이 가입된 카카오톡 비밀 단체 대화방에 잠입해 이들이 금값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살펴봤다.

 

◆그들만의 규칙, 그들만의 시세

 

비밀 단체방은 A협회라는 곳이 운영해온 곳으로, 참여자 간 개인 대화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운영자가 일일 시세가 변동될 때마다 매입가와 판매가가 정리된 그림 파일을 공유할 뿐이다. 이곳에 올라오는 매입·판매가는 부가가치세가 적용되지 않은 금액이다.

 

금 시장 관계자들은 대부분 이 방에서 공유되는 금값에 따라 거래를 이어가면서도 어떤 기준으로 일일 시세가 정해지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 금 거래업자는 “누가 정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이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실제 취재팀은 A협회 관계자들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받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휴대전화 전원을 꺼둔 경우도 있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이곳 관계자 B씨는 자신을 “도매총판업자이면서 여러 단체 대화방 중 한 곳의 운영자”라고 소개했다.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는 금 시세 책정 기준에 대해 B씨는 “도매가로 올리는 것”이라며 “업자들이 시세를 올려주면 그걸 기본으로 올린다”고 말했다. 그 업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기준으로 시세가 정해지는지 등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종로 금 시장만의 시세를 정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뒷금 거래가 바람직하지 못한 거래 관행이라는 점은 B씨도 인정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막을 수 없는 거 아니겠나”라며 “업자들 간 세금 다 내고 (금을) 살 수 없는 입장이어서 이런 관행이 계속되는 것 같다”고 했다. B씨에 따르면 A협회는 현재 실체가 없어져 유명무실해졌고, 협회장은 중국으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다만 금 거래업자 간 정보 공유를 위해 단체 대화방에서는 일일 시세가 지금도 공유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차라리 부가세를 매기지 말자”

 

가격이 공유되고, 음성적인 시장이 유지되는 것은 뒷금에서 시작된다. 이 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것은 이들 모두 ‘탈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국세공무원 출신 차삼준 세무사는 종로 금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에 대해 “사실 100% 뒷금”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거래만 따져도 귀금속 부가세가 10조원은 된다”며 “10조원이 소비되면 1조원이 (세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한 푼도 안 들어온다”고 했다.

 

차 세무사는 금 세제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분야 권위자다. 그는 KRX 금시장도 부가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뒷금 시장이 그대로 있으니 KRX 들어갔다 나온 금도 녹여서 뒷금으로 팔고, 함량(금 순도) 문제도 있다. 시장가격의 이중성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니 “원자재 금에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금 거래시장을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금 거래업자 C씨는 “금은 기축통화다. 사실상 돈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돈에 세금 물리는 건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지나 목걸이 같은 제품에 부가세를 매기는 건 당연하지만, 원자재 금은 돈이나 마찬가지이니 부가세를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 시장 관계자 D씨도 “원자재 금에 대한 세금을 물리지 않으면 오히려 금 거래가 활성화되고 대량으로 금을 거래하는 업자들로부터 법인세를 더 걷을 수 있어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금은 기축통화이기도 하지만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는 재화의 성격도 있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금이 (동전이나 지폐 같은) 통화 자체는 아닌 만큼 재화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종로 금 시장 양성화 방안과 관련해 “현실적인 부분은 국세청과 함께 짚어봐야 할 것 같다”면서 “제도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거래해온 방식이 있으니 (개선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정위에 신고하니 “증거 가져와라”

 

뒷금 거래는 순도가 낮은 불량 금이 유통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종로의 한 귀금속 도매업자는 “뒷금 거래는 결제를 금으로 한다. 업자 간 믿음을 기반으로 금을 받아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순도 99.9%인 24K 금 대신 99.5% 미만 금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피해를 당한 쪽은 억울해도 음성거래에 동참했기 때문에 신고할 수도 없다”고 귀띔했다.

 

순도 문제를 둘러싸고 도매상과 소매상 간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소매상(금은방) 단체인 한국귀금속중앙회는 손님이 디자인 변경 등을 이유로 맡긴 고금에 대해 정련 비용을 지불해도 도매상 측이 순도 99.9% 금 대신 99.5% 제품을 만들어 소매상에 돌려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소매상 측은 도매상에서 주문을 받으며 챙긴 정련 비용를 횡령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귀금속중앙회는 지난해 9월 주문 내용과 다른 함량 미달 불량 금이 납품되는 일이 반복되자 도매상 단체인 순금협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도매상 측이 담합했는지를 조사해달라는 취지였다. 귀금속중앙회는 불량 금이 납품된 사례들을 수집해 공정위에 제출했는데, 이 중엔 금 함량이 11.3%나 부족한 불량 금이 납품된 사례도 있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지난 4월 “직접적인 입증자료가 첨부돼 있지 않아 조사 착수 여부 등을 결정하기 곤란하다”면서 “신고 내용을 보완해달라”고 귀금속중앙회에 회신했다. 귀금속중앙회 관계자는 “우리가 수사기관도 아닌 이상 어떻게 순금협회 내부 자료를 수집해 제출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공정위는 이후 자체 조사 결과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도매업자들은 “소매상 측에서 의심하는 정련 비용 횡령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99.5% 순도 제품을 납품하는 것은 시장에서 다수가 99.5% 제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또 “시장에서 99.9% 제품을 모두 원한다면 우리도 생존을 위해 당연히 99.9% 금만 취급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