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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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처럼 경찰 따돌리고 세 넓히는 태국 반정부시위

‘밀크티동맹’ 홍콩시위 전략 차용
SNS으로 집회 장소 변경 등 알려
당국 공안몰이 속 전국 21곳서 시위
지난 14일 태국 방콕 중심가 랏차쁘라송 네거리 도로에서 반(反)정부 시위대가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태국=연합뉴스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 발사에 대비한 고글·안전모·우산 사용, 경찰 봉쇄를 피하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긴급히 개최 장소를 알리는 ‘게릴라식 시위’….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광경이 최근 태국 수도 방콕에서 펼쳐지고 있다. 당국이 5인 이상 집회를 금지한 긴급포고령을 내리면서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태국 청년들은 ‘밀크티 동맹’인 홍콩 청년들이 쓰던 전술을 차용해 총리 퇴진 및 왕실 개혁 촉구 시위 동력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긴급포고령 발령 나흘째인 18일 시위 지도부는 SNS에 “오늘은 어디에서 만날까, 흠”이라는 글을 올리며 일단 대기하라는 지침을 줬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방콕 승전기념탑과 아속 사거리로 재빨리 모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승전기념탑에는 순식간에 1만명 안팎이 운집했다. 시위대는 지난 16, 17일에도 집회 예정시간 직전 SNS에 올린 장소 긴급 변경 공지를 통해 경찰을 따돌릴 수 있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체포된 활동가들의 사진을 흔들며 “우리의 친구들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경찰을 향해서는 “독재의 노예들”이라고 야유를 보냈다. 지난 나흘간 경찰은 시위 지도부급 인사를 포함한 80명가량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2명은 외부 행사 참석차 왕궁을 나선 수티다 왕비와 디빵꼰 왕세자의 차량 진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여왕의 생명을 위협한 것으로 판단되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당국의 이런 공안몰이에도 이날 전국적으로 최소 21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이 물대포를 동원해 16일 집회 참가자를 강제해산한 이후라 시위 참가자 상당수는 고글과 안전모를 착용했다. 이들은 인간사슬을 만들어 대오 선두에 우산을 전달했고, 해가 지자 휴대전화 조명을 켰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대가 온라인상에 퍼뜨리고 있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호소문. 트위터 캡처

이런 모습들은 모두 홍콩 시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권위주의 반대’ 기치 아래 뭉쳐 최근 몇 달간 관계를 깊이 다졌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양국에서 공히 인기 있는 음료에서 따온 ‘밀크티 동맹’으로 불린다. 홍콩 시위 주역 조슈아 웡은 “태국 민주화를 위한 그들의 투지는 단념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태국 시위대를 응원했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대만 등에서 연대시위가 열렸거나 계획되는 등 세계적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그룹 2PM의 태국 출신 멤버 닉쿤은 “폭력 사용은 수수방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찰을 비판했고, 태국의 한 K팝 팬클럽은 시위대에 2만5000달러를 기부했다.

 

유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