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이후 삼성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이재용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이 부 회장은 2014년 5월 이 회장이 쓰러진 직후부터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 왔지만, 향후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식과 시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용 총수 체제로 공식 전환
재계와 삼성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회장 승격 절차와 시점 등을 조만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와 각 계열사 사장단이 이끄는 자율경영체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3남 중 막내로 치열한 후계경쟁을 거친 이 회장과 달리, 이 부회장은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돼 실질적인 총수역할을 해왔다. 이 회장은 아들 이 부회장과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3남매를 뒀는데, 이 부회장이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를 포함한 전자 계열사를 전담하고 있다.
둘째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를 이끌고 있으며, 앞으로도 호텔·레저사업 분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막내 이서현 이사장은 2018년까지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재임했다가 현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 이사장의 경영 복귀설을 점치기도 하지만, 이 부회장이 챙기는 핵심 계열사를 물려받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與 압박에 지배구조 개선하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 등 지난 23일 종가기준으로 약 18조2251억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등 3남매가 지분 일부를 사회공헌 차원에서 환원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회장의 주식 처분을 계기로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이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을 약 20% 보유하고, 또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실질적 최대주주 역할을 하며 경영권을 갖춘 체제다. 이런 형식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당에서는 삼성 지배구조와 맞물린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의 경영권 공격 가능성과 주식 매각에 따른 법인세 처리 등을 고려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신중하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시대 안착 과제는 ‘사법리스크’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삼성을 진두지휘하며 방산·화학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미국의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하는 등 과감하게 계열사 개편작업에 나섰다.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경기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국내외 반도체 생산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무역갈등 여파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급증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현장경영을 이끌며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상속에 따른 세 부담 처리와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 부회장이 연루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과 국정농단 뇌물혐의 파기 환송심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검찰에 10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특검 기소에 따라 80번의 재판을 받았다.
재판 상황을 고려해 이 부회장이 단기간에 후계작업과 지배구조 개편 등을 추진하기보다는 장기 과제로 설정해 놓고 순차적인 로드맵을 시행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루는 이유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