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호도 조사에서 밀린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하면서 막판 변수로 떠오를지 관심이 쏠린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WTO로부터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선호도 조사에서 유 본부장을 크게 앞섰다는 통보를 받은 뒤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28일 소집된 전체 회원국 대상 회의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선호도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며 그를 사무총장으로 추천했다. WTO는 전체 회원국의 컨센서스(의견일치)를 도출해 다음달 9일 열리는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차기 WTO 사무총장을 승인할 계획이다.
청와대는 WTO 사무총장 선출과 관련해 “아직 특별이사회 등의 공식 절차가 남아 있다”며 “선호도 조사 결과가 곧 결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WTO 사무총장 절차에서 의장단이 집계한 개인별 득표수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일부 외신에서 수치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수치는 저희는 나이지리아 측에서 추정치를 내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WTO 결과 승복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 결과에 승복해도 미국이 반대 입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WTO 상소기구가 미국의 반대로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WTO 사무총장 선거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제현정 실장은 “컨센서스 방식이 굉장히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한 명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작동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매우 강한 합의방식”이라며 “앞서 WTO 상소기구에 이어 이번 사무총장도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주에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며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승리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1999년 사무총장 선거에서 당시 유력후보였던 마이크 무어 전 뉴질랜드 총리와 수파차이 파니치팍디 전 태국 부총리가 막판 경합 끝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마이크 무어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수파차이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번갈아 맡기로 합의를 봤던 사례가 재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로서는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든 셈이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법무법인 광장의 박태호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여러 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게 아직은 가정”이라며 “다음달 9일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우중·홍주형·박현준 기자 l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