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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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상온 초전도 물질의 발견

과학자들의 꿈 ‘초전도의 성배’
섭씨 15도 상온서 발견돼 화제
임계온도 더 높이려 노력 계속
상온 상압 초전도 구현도 기대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을 너끈히 해내는 사람을 ‘슈퍼맨’ 혹은 ‘초인’이라고 한다. 초전도체도 보통의 전도체(도체라고도 부른다)가 꿈도 못 꿀 일을 할 수 있다. 평범한 도체와 초전도체는 정말 다르다. 슈퍼도체인 초전도체의 전기저항은 0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정확히 0이다. 0에 가까운 것과 정확히 0인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냐고? 방법이 있다. 자기장을 걸면 초전도체를 빙 둘러 전류가 흐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류가 자기장을 끈 다음에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보면 된다. 저항이 정확히 0은 아니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전류의 양은 점점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전도체의 전류는 아무리 기다려도 줄지 않는다. 전기저항이 0인 초전도체를 이용하면 에너지 손실 없이 전력을 멀리 보낼 수 있고, 큰 자기장도 만들어낼 수 있다. 병원 MRI(자기공명영상) 장치는 지금도 초전도체를 이용해 강한 자기장을 만든다. 또 외부 자기장의 반대 방향으로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초전도체의 마이스너(Meisner) 효과는 영구자석 위 초전도체를 공중 부양시키는데, 이를 이용해 자기 부상 열차를 만들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물리학

1911년 온네스가 영하 269도(절대온도 4.2K)의 낮은 온도에서 수은의 초전도를 발견한 이래, 초전도의 임계온도를 더 올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1986년에는 특정성분의 세라믹 물질이 영하 238도에서 초전도를 보인다는 것이 알려졌다. 여전히 낮았지만, 이전보다는 상당히 높은 온도여서 고온 초전도체라 불린다. 올 10월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섭씨 15도 상온에서 초전도를 보이는 물질이 소개되었다. 과학자들이 오래 꿈꿔온, 초전도의 ‘성배’라 할 ‘상온초전도체’가 발견된 것이다. 잊지 마시길. 고온 초전도체보다 상온 초전도체의 임계온도가 훨씬 높다.

세 물리학자의 이름을 딴 BCS이론은 초전도 발견 후 한참 뒤인 1957년에야 완성되었다. 전자가 고체 안을 움직이며 주변 원자를 진동시키면, 이렇게 만들어진 진동이 이어서 다가오는 다른 전자를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두 전자 사이에는 보통 서로 밀치는 힘이 작용하지만, 고체 안 원자 진동은 인력을 만들어 두 전자가 짝을 이루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가능해진 전자쌍은 물질 안에서 저항 없이 움직여 초전도의 근원이 된다. BCS이론에서 초전도 임계온도는 원자 진동의 진동수에 비례하고, 진동수는 질량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이용하면, 가벼운 원자로 이루어진 고체가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를 보일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자가 바로 수소다.

이번에 발견된 상온 초전도 물질에도 수소가 들어 있다. 수소는 워낙 가벼워, 온도가 낮아도 가만있지 않고 휙휙 돌아다니는 특성이 있다. 자유분방한 수소를 옴짝달싹 못하게 해 고체로 만들려면 온도를 극단적으로 낮추어도 되지만 엄청난 압력으로 눌러도 된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서는 아주 높은 압력을 구현하기 위해 원뿔 모양 다이아몬드 두 개를 이용했다. 압력은 힘을 면적으로 나눈 것이어서, 뾰족한 쪽이 서로 마주보도록 하고 양쪽에서 원뿔을 누르면 가운데 작은 면적에 높은 압력을 줄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물질이 15도에서 초전도를 보이려면 무려 260만 기압의 압력이 필요했다. 가로세로 1㎝의 작은 면적에 약 500마리의 코끼리가 올라서 있을 때의 압력이 이 정도다. 높은 압력을 버티려 다이아몬드를 이용했지만, 원뿔 다이아몬드가 자꾸 부서져서 연구의 가장 큰 장애가 바로 다이아몬드 구입 예산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번 발견이 끝이 아니다. 초전도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다음 목표는 이제 상온 상압 초전도체다. 수소와 다른 원소를 섞어 만든 물질이 1기압에서 고체상태를 유지한다면, 상온 상압 초전도의 구현이 물리학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온도를 높이는 경쟁 다음에는 압력을 낮추려는 경쟁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의 등장을 손꼽아 고대한다. 그때가 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이 글 쓰는 동안 따뜻해진 노트북도 옛날이야기가 될 거다.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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