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사진 왼쪽)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는 ‘화합과 포용’의 메시지로 최악의 코로나19 팬데믹에 지친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선거전 막바지까지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우려해 델라웨어주 자택에 칩거하면서 유권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거 운동을 계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폭스뉴스 등 보수 매체는 이달에 만 78세가 되는 고령의 바이든에게 ‘벙커에서 나오라’고 줄곧 조롱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체력과 정신력 면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바이든의 칩거식 선거 운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미국은 대선일이 다가오면서 코로나19 수렁에 갈수록 깊게 빠져들었다. 대선 직전에 연일 확진자 숫자 신기록이 속출하고, 미국 유권자는 장기화하는 실직과 영업 중단 등으로 생계의 위협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비판론을 잠재우려고 ‘우리가 벌써 코너를 돌아섰다’고 다독였지만 허사였다. 미국인들은 정권 교체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지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 더는 기댈 곳이 없는 미국인에게 바이든의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정치 경륜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여겨졌다.
바이든은 선거 막판에 줄곧 ‘희망’을 얘기하고, 민주당이나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블루 스테이트나 레드 스테이트가 아닌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뻔한 메시지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미국인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바이든은 선거 막바지에 트럼프보다 2배가량 많은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위기의 시대를 이끌 지도자로서 안정감, 신뢰감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바이든에 대한 호감도는 줄곧 상향 곡선을 그렸고,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막판 뒤집기를 제어하는 힘이 됐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트럼프가 골수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 것과는 달리 바이든은 지지층의 확대 전략에 주력했다. 미국 대선은 누가 더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더 많이 끌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지지층 결집 전략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은 자신이 걸어온 정치 역정에서 벗어나지 않고, 고집스럽게 ‘중도 노선’을 고수했다. 그는 경찰 예산 감축,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전 국민 대상 확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그린뉴딜 정책 등 민주당 내 좌파 그룹의 요구를 모두 일축했다. 심지어 바이든은 대선 유세에서 “대통령이 되면 공화당원들도 놀랄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바이든의 광폭 행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바이든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바이든과 민주당이 미국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만들려 한다고 공격했다. 바이든은 “미국인이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지 않으냐”고 응수했다. 바이든은 책임감이 강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지도자로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했다. 트럼프가 ‘성난 아웃사이더’로 정치 개혁을 강조했으나 바이든은 ‘행복한 전사’로 화합과 포용의 정치를 추구하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가 모든 무대에서 주연 자리를 꿰차는 행보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이든은 막후의 연출자에 머무르는 여유를 보인 것도 둘로 갈라진 미국의 유권자들이 바이든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바이든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과 비교할 때 호감도가 높아 민주당 지지자를 결집하고, 무당파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대선에서 일부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파 유권자는 기권하거나 제3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