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 같았지만 이젠 존재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7일(현지시간) 오후 1시30분 미 워싱턴 백악관 앞.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소식이 긴급 타전된 뒤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가운데 애기 조셉(43·여)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인 조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차별적인 시선에 시달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중미의 아이티와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에 대해 ‘쓰레기 같은 국가’라고 말하는 등 혐오 정서가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던 탓이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분열돼 왔다. 이젠 이런 차별을 멈출 시간”이라며 “내가 미국에 온 건 모두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이날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동부 뉴욕까지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뉴욕 중심 타임스스퀘어는 축제의 무대로 변했다. 공식 축하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는 없었지만 수백명의 시민들이 춤을 추거나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거대한 댄스장을 방불케 했다. 4차선 차로를 통제해 거대한 광장으로 변한 이곳에는 마이클 잭슨의 ‘블랙 오어 화이트’와 같이 인종 화합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이 흥겹게 울려 퍼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 유행어인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손팻말을 만들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다수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세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마이애미에서도 식당 곳곳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축하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바이든 당선인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 우편투표를 배달해준 연방우체국 직원에게 시민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영상도 올라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끝까지 소송전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도 이어졌다. AP통신은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권총은 물론 산탄총을 소지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개표가 진행 중인 곳에 모여들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전했다. 공화당 텃밭에서 바이든 후보 쪽으로 기운 애리조나주 피닉스 개표소에서는 수백명의 친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개표원들을 체포하라”, “트럼프 대통령 4년 더”, “바이든을 체포하라”고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소총을 소지하기도 했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개표소 앞에서도 시위대 2명이 소총을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고, 펜실베이니아주 한 개표소에서는 권총을 소지한 남성 2명이 체포됐다.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 시내에서 바이든 지지자들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양측의 대치가 폭력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자 경찰이 개입, 양측을 강제로 분리하기도 했다. 또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는 오리건주 세일럼에서 지나가는 시민에게 후춧가루를 뿌렸고, 미시간주 랜싱에서는 총기를 휴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거리를 점령한 상태에서 “여기는 우리의 도로다. 트럼프가 이겼다”고 외치기도 했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반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 ‘전국의 시위나 집회에 (트럼프) 지지층이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는 등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하는 이들은 분노와 실망, 허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며 “선거 결과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려는 트럼프 지지자들도 있지만 언론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믿는 지지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