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삶과문화]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문학의 힘

한·중·일 공동의 문화유산 축적
인문·미학적인 지향점 비슷해
문학의 세계는 대화이자 소통
언어 다를지라도 외교관 역할

지난 10월에 이 땅 곳곳에서 문학축제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아쉬운 것은 대체로 온라인 생중계를 하거나 유튜브, 녹화방송, 줌 화상으로 이루어져 예년과 같은 친교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외국인을 초청하지 못하는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현장에 모시거나 줌 화상으로 한 특강을 듣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국제회의나 공연 같은 것이 다 취소되는 마당에 문학이 그래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니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손무가 쓴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백전불태’라는 말이 나온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싸움할 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외교관계에서도 꼭 필요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북한, 중국, 일본과의 외교가 중요하다. 북한과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있고 위로는 중국대륙, 아래로는 일본열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 있는 중국인 유학생 수가 7만명이다. 중국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수도 비슷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외국에 가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이 미국보다 중국으로 더 많이 가게 된 것이 4년 전부터라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은 1983년에 중국 내에서 발간된 ‘남조선소설집’에 실린 17편 소설에 대한 꽤 긴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모옌의 글을 보니 중국 당국에서 의도적으로 ‘남조선’의 근현대사를 알기 위해 시대상이 반영된 작품들을 뽑은 것 같다. 즉 작가나 작품이 유명해서 뽑은 것이 아니라 ‘남조선’ 정치사를 파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뽑아 엮은 작품집이라 여겨졌다. 중국문학과 한국문학을 비교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비교적 젊은 한국 작가의 60∼70년대 창작은 이미 상당히 전위적이고 선봉적이어서 그들이 서구문학을 학습하고 참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지난 80년대 중국 작가들의 노력이 사실은 한국 작가들이 이미 걸었던 길에 대한 답습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수록된 작품들에 삶의 기운이 넘치며, 인생과 현실에 주목하고 깊이 있는 비판적 역량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이런 말을 한 뒤 결론 부분에 이르러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공동의 문화유산을 축적했고, 삼국의 문학작품은 인문적이며 미학적인 지향점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위로 거슬러 가면 갈수록 이런 공통점은 더욱 많을 것이다”라고 했다. 삼국의 외교관계가 좀 삐걱거리더라도 문인은 이처럼 이웃나라에 대해 덕담도 할 줄 알고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작년에 중앙대 문창과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일환으로 초청한 외국인 문인 14명 중 중국의 류전윈을 따로 학교로 초빙해 특강을 들었다. 그가 한 말 중에 “문학은 한 민족과 다른 민족들 사이의 차이를 쓰는 것”이라고 한 것이 있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세계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서로 같다는 것을 알아야 세계가 다른지도 알 수 있었다는 말도 퍽 인상적이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문학인들의 교류를 빠뜨릴 수 없다. 문학은 국경을 초월케 하고 체제의 차이를 극복케 한다. 문학인이라도 한국과 북한,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간 막힌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국제PEN한국본부에서 후원하여 나오고 있는 ‘망명북한작가 PEN문학’이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문예지다. 독일문학사는 통일문학사에서 분단문학사로 갔다가 다시 통일문학사로 합쳐졌다. 분단 시절에는 상대방의 문학에 대해 비판했지만 인정할 것은 했다. 문학인들이라도 북한과는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중국과 일본과는 선린외교의 외교관 노릇을 하면 좋겠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