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예술가 큰 스님’이 있다. 서예와 도예, 옻칠, 민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굵직한 흔적을 남겨왔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方丈) 성파(81) 스님이다. 스님은 최근 세계 최대 한지를 제작했다. 무려 너비 3m, 길이 100m 크기이다. 한지는 이어붙임 없이 단 한 장으로만 제작됐다. 지난 여름에는 너비 12m, 길이 24m 크기의 한지를 만들었다. 초대형 한지를 왜 만든 것일까. 16일 통도사 서운암에서 성파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기거하는 방은 흔한 사찰의 모습이 아니었다. 입구에는 그림틀로 보이는 나무들이 쌓여있었고, 철제 작업대 등도 보였다. 나무로 된 탁자를 두고 성파 스님과 마주 앉았다. 온화한 미소의 스님은 말없이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초대형 한지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세계 최대를 목표로 하고 만든 건 아니고, 허허∼ 쓸 목적이 있어서 24m짜리를 만들었는데 되는 거라. 그럼 더 큰 것도 할 수 있지 않겠나 해서 한 거지 특별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오.”
한지는 보통 닥나무에 닥풀을 섞은 것을 물에 넣어 고루 풀리게 한 다음, 발로 종이물을 걸러 뜨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렇게 떠낸 것을 말리면 종이가 된다. 큰 종이를 만들려면 그만큼 큰 발이 필요하다.
“그렇게 큰 발을 만들 수도 없고, 또 어떻게 뜨나. 그래서 생각을 바꿨지. ‘종이가 물 밖으로 나가라’ 할 것이 아니라 ‘물 네가 나가라’ 하면 되지 않나. 허허.”
지난 9월 서운암 장경각 마당에는 수평을 맞춘 100m 길이의 한지 제작 틀이 놓였다. 틀에 한지 원료들을 붓고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에는 30여명이 동원됐다. 재료를 넣고 섞는 작업에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어느 한 곳 얇거나 두꺼운 곳 없이 일정하게 고르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스님은 말했다.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재료만 5000L 고무통 14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이 들었다.
이런 작업이 끝나면 물을 빼면서 가라앉힌다. 물 빠진 닥종이 섬유가 자연건조로 1㎜ 내외 두께의 한지로 굳는 데 보름 정도 걸렸다. 틀 위로는 새벽 이슬과 바람, 비를 피할 수 있게 비닐하우스가 들어섰다.
100m 길이의 한지로 무엇을 할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단다. 스님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작업 자체가 어찌 보면 예술이자 수행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무대를 차려놓은 것에 불과하고, 그 위에서 무엇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24m 길이의 한지에는 불화가 그려진다. 완성된다면 이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불화이다.
불화에는 옻나무에서 추출한 옻액과 오방색의 채색염료를 사용한 ‘옻물감’이 쓰인다.
불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 불화 중 우수한 부분만 선택해 완성할 계획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를 초빙해 설계도 형식의 제작도도 만든다.
스님은 “전통은 계승, 발전하는 것이지, 계승하기만 하고 답보하면 안 된다. 예술가로서도 안 될 일”이라며 “우리가 하려는 것도 옛것의 본을 보되 현대 미술, 현대 종이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대형 불화 제작은 코로나19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우리나라 불교와 불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취지이다. 성파 스님은 “한국 불화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미술사적 중요성에 비해 종교미술이라는 편견과 차별로 미술계, 미술사에서 소외돼 왔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회화의 주류로 인식되고 있는 서양의 회화도 11세기 르네상스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고려 불화의 기원은 이보다 앞선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우리 불화는 역사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미적 아름다움도 서양회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통도사는 대형 불화를 위한 작업장을 따로 만들어 내년부터 불화 그리기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완성까지는 최소 3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성파 스님은 “작품성을 갖춘 초대형 불화의 탄생은 이야깃거리가 된다”며 “이를 통해 한국의 미술이 서양미술 못지않다는, 한국 미술의 자부심을 내세워 보려 한다”고 힘줘 말했다.
양산=글·사진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