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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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서 ‘꾸벅꾸벅’ 전두환, 23년 만의 유죄 판결에도 “…”

재판 내내 상식 밖 행동 지탄… 5·18단체 분노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사자명예훼손 혐의 선고공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정을 나서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30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시종일관 꾸벅꾸벅 조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여 지탄을 받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선고 이후 법원을 떠나면서 취재진의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느냐”, “광주시민과 국민께 사과 안 하느냐”는 등 질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는 이날 전 전 대통령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청각보조장치(헤드셋)를 쓰고 부인 이순자(81)씨와 피고인석에 앉은 전 전 대통령은 김 부장판사가 ‘전두환 피고인 맞습니까’라며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묻자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이 판결을 앉아서 듣도록 배려했는데, 전 전 대통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조는 모습을 보였다. 20여분쯤 지나서 잠깐 깬 전 전 대통령은 이내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채 잠들었다. 전 전 대통령의 상식 밖 행동은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할 때까지 이어졌다.

 

반면 부인 이씨는 선고 내내 정면을 응시한 채 착잡한 표정을 지었고, 선고 순간엔 고개를 숙였다. 전 전 대통령은 선고가 끝나자 법정 경위의 안내를 받아 부인 이씨의 손을 잡고 퇴정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법정에서도 조는 모습을 보여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재판부에 결례를 범했다”고 대신 사과하기도 했다. 이어 올해 4월 두 번째 출석 당시에도 신원 확인 이후 곧장 졸기 시작했다. 전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전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출발할 땐 시위대를 향해 “말 조심해 이놈아”라고 고함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곧바로 법원을 떠나지 못했다. 법원 앞에서 5·18 단체 회원들이 농성을 벌이자 경찰이 진출로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법정 경위들은 계란 투척 등에 대비해 퇴정하는 전 전 대통령 내외에게 투명 우산을 씌웠다. 부인 이씨의 부축을 받고 다른 경호 인력들에 에워싸인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한 채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전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은 후문을 통해 빠져나가 출석 당시 왔던 길로 향했지만, 5·18 단체 회원들이 도로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30일 광주지법 앞에서 5·18단체 회원들이 구속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전 전 대통령은 법정 출석 당시에는 에쿠스 차량을 타고 왔지만, 나갈 때는 카니발 차량을 이용하기도 했다. 광주지법 정문 밖에선 분노한 시민들이 전 전 대통령이 타고 온 에쿠스 차량이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하곤 계란과 밀가루를 투척했다. 한 시민이 차량 문을 열고 전 전 대통령이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내 전 전 대통령의 것으로 추정되는 중절모를 발견하고 높이 치켜들기도 했다.

 

이날 현장을 찾았던 오월어머니회 소속 한 회원은 연합뉴스에 “전씨가 마지막까지 치졸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을 한 조비오 신부를 겨냥해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