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1일 오후.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20일 오후 3시쯤 노토반도 해역에서 해상자위대 P-1 초계기에 한국군 구축함이 화기관제레이더(사격통제레이더)를 쐈다”며 한국군을 비난했다.
난데없이 쏟아진 비난에 한국 국방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국방부는 “작전활동 도중 레이더를 운용했으나 일본 초계기를 추적하고자 운용한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수십년간 부침을 거듭해온 한일 관계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오던 한일 군사협력과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린 ‘일본 초계기 저공비행위협’ 사건이 터진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한일 군사협력과 신뢰구축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일본은 신뢰와 협력 회복 대신 도발과 대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지속하면서 군사력을 증강, 한국 해군과 공군을 몰아붙일 태세다.
◆불신의 일본, 한국 견제하려 초계기 띄웠나
일본 초계기 저공비행위협 사건 두 달 전인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할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 욱일기를 게양하는 문제를 놓고 한일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우리측이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달라고 하자 일본은 관함식 불참을 통보했다.
여기에 강제 동원 판결 등으로 양측간에 불신의 벽이 한층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진 초계기 저공비행위협 사건은 한일 양국을 극한 대결로 치닫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사건은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에서 사격통제레이더를 쐈다’ 또는 ‘일본 초계기가 레이더 전자파를 오인했다’는 것 외에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는 구조였다.
전문적 관점에서 광개토대왕함 레이더 운용자료와 일본 초계기 레이더 전자파 수신 정보 등을 동시에 공개해 비교하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었지만, 불신의 골이 깊게 파인 상태에서 정보공개는 불가능했다.
이웃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양국 군 전문가들이 실무적 차원에서 비공개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며 외교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봉합하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은 사건을 먼저 공개하면서 한국을 정치적으로 몰아세웠다. 이는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2019년 1월 18, 22, 23일에 걸쳐 이뤄진 일본 초계기의 한국 해군 함정에 대한 저공위협비행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23일에는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이 오후 2시에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었으나 40분 만에 중단하고 급히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거듭된 도발에 ‘절제된 대응’을 강조하던 국방부의 태도도 강경해졌다.
서욱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현 국방부 장관)은 “명백한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일본을 비난하는 여론도 높아졌다.
한국과 일본 국방당국은 사태 해결을 위해 접촉을 가졌으나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다.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거론 등이 이어지면서 한일 안보협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양국 군사협력과 신뢰를 단번에 무너뜨렸던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비행. 일본 초계기는 왜 인도적 구조작전중이던 광개토대왕함에 접근했을까.
2000년대 이후 한국 해군 함정들이 대형화하면서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이에 따라 일본 해상자위대 활동영역과 겹치는 부분도 많아졌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으로 한일이 공동대응하던 북핵 위기는 낮아졌고,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등으로 남북 관계는 훈풍을 맞았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과거사 등의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서 상호 불신이 커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해군 함정들의 대양 진출은 일본의 경계심을 높였다는 평가다. 동해와 남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본 초계기가 한국 해군 함정에 근접했던 이유다.
한국 해군 함정을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 불법해상환적을 하던 북한 선박처럼 경계하고 감시했다는 점에서 일본이 한국을 우방국이 아닌, 적으로 간주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적대적 의도가 표면화되면, 한국도 일본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조만간 출범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미일 3각 공조 복원을 시도해도, 초계기 사태 이전 수준의 협력은 이뤄지기 힘들 수 있다.
신뢰를 쌓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2년 전 일본 초계기 저공비행위협 사건 당시 군의 대응에 관여했던 수뇌부들은 지금도 군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이다.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 서욱 육군 중장은 국방부 장관,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으로서 일본과의 협상에 나섰던 부석종 해군 중장은 해군참모총장, 합참 차장이었던 원인철 공군 중장은 합참의장을 맡고 있다.
이들에게는 초계기 사태 당시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군비증강은 계속된다”…한일 충돌 위험
일본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해군과 공군력을 증강하는 한편 장거리 감시 및 공격능력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18일 지상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이지스 어쇼어 배치 계획을 중단하고 이지스함 2척을 새로 건조하기로 했다.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으로 불릴 신형 함정에는 이지스 어쇼어에 쓰기로 계약한 레이더(SPY-7)와 미사일 발사 장치 등을 탑재한다.
도입 비용으로는 4800억엔(약 5조1000억원)~5000억엔(약 5조30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이지스 어쇼어 배치 비용보다 20% 이상 높은 것이다.
일본은 2017년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비한다며 미국에서 이지스 어쇼어 2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지난 6월 중단했다.
이지스 어쇼어는 이지스구축함에 탑재되는 레이더와 SM-3 요격미사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요격미사일 추진체(부스터)가 민간인 거주지역에 떨어질 위험이 있는데, 이를 수정하려면 대폭적인 개량이 불가피하다.
이에 일본은 9000t급 이지스함 2척을 건조해 이지스 어쇼어를 대체할 방침이다. 한국 해군 세종대왕급 구축함과 맞먹는 크기다.
적군의 공격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타격을 감행할 장거리 미사일도 내년부터 개발한다.
육상자위대 12식 지대함 미사일을 5년에 걸쳐 개량, 사거리를 900㎞로 늘린다. 사거리 연장이 성공하면 일본에서 만든 첫 장거리 미사일이 된다.
현재로서는 지상에서 운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구축함이나 전투기에 탑재될 가능성도 있다. 공격을 당했을 때 방위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본의 구상대로 미사일 개발과 장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미사일 개발은 가능하지만, 전투기나 구축함에 체계통합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문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20대에 미국산 재즘(JASSM)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202년대 후반까지 장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거리가 900㎞에 달하는 재즘이 F-15에 탑재되면 일본 항공자위대의 전략적 타격력은 크게 높아진다.
하지만 비용 분석결과 미사일에 필요한 전기 구성품 공급 부족 문제 등이 겹쳐 소요 예산이 당초 예상보다 5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방위성은 내년도 예산에 213억엔(2234억원)을 포함했으나 이 정도 예산으로는 개조가 어렵다고 판단, 사업 추진을 보류했다.
일본은 자국산 C-2 수송기를 개조한 RC-2 전자전기도 도입중이다. 광대역에서 고감도의 디지털 신호를 처리하는 수신 방식과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복잡한 신호들을 신속하게 분석할 능력을 갖췄다.
현재 1곳뿐인 전자전 부대 거점도 8곳으로 늘린다.
일본은 40여 년 만에 자국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 주도로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진행할 방침이다.
미국 록히드마틴이 스텔스 등 기술 지원을 담당하지만, 개별 부품 공급은 영국 BAE시스템가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개발과 양산에 5조엔(약 52조5000억원)을 투입, 2035년부터 6세대 전투기 90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해군비전 2045’를 앞세운 한국 해군은 경항공모함 등을 확보해 세계 어디서든 작전이 가능한 대양해군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을 겪은 공군도 F-35A 추가 도입을 추진하며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 해군과 공군 활동영역이 넓어지면, 이를 경계하는 일본의 움직임도 강화될 위험이 있다.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비행과 같은 도발이 재연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우발적 충돌과 갈등에 대비한 군 당국의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