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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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택트로 요리·취미 교실… ‘슬기로운 주민자치활동’

자치회, 비대면 활동 확산
유튜브 등 지역 SNS 채널 통해
어학·운동… 다양한 취미 공유
주민들 재능 기부… 만족도 높아
“코로나 블루 날리고 활기 찾아”
일부 자치구, 영상 제작 교육도
서울 성동구 성수1가2동 주민자치회가 지난 18일 공개한 ‘오늘은 내가 요리사’ 영상. 유튜브 캡처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에 계신 분들 많으시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성동구 성수1가2동 주민 100여명이 각자의 집에서 휴대전화 영상을 켜고 주방 앞에 모였다. 영상에서는 ‘오늘의 요리사’ 구정희씨가 준비한 바질페스토 파스타와 뽀모도로 파스타 요리의 재료 설명이 흘러나왔다. 구씨는 “양파는 혈당이 오르는 걸 방지하는 효과가 있고 브로콜리는 미세먼지 해독에 좋다”며 화면 밖 참가자들과 소통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성탄절을 앞두고 성수1가2동 주민자치회가 준비한 ‘오늘은 내가 요리사’였다. 최근 백종원 요리연구가가 진행하는 TV 예능프로그램 ‘백파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전에 참가 신청을 한 주민들에게는 스파게티면과 꽃장식, 소스, 야채 등이 담긴 요리키트가 배달됐다. 주민들은 요리사와 같은 재료를 활용해 비대면 영상으로 함께 요리하며 음식을 완성했다.

요리가 끝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주민들이 만든 요리사진과 함께 후기들이 속속 올랐다. ‘9살 정희정맘현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주민은 “어디 갈 데도 없고 지루해하던 고3 아들과 아홉살 딸이 주방에서 영상을 보며 힘들지 않게 직접 스파게티를 준비했다”며 “코로나로 답답해하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을 부쩍 나게 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만족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주민의 스트레칭 운동 재능기부 영상. 유튜브 캡처

◆건강·어학·문화 등 다양한 취미 공유하는 주민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외출을 하기도 부담스러워진 요즘, 동네주민이 자택에서 비대면으로 이웃들과 함께 취미를 즐기는 공동체 활동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의 주민자치회들은 유튜브, 밴드 등 지역 SNS 채널을 활용해 각종 비대면 강연과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주민자치회 우수사례로 선정된 9건 중 4건이 SNS 채널을 활용한 비대면 주민참여 사례였다.

동작구 사당2동 주민자치회는 지난 4월부터 ‘사이마을 감성콕!콕!’이라는 비대면 취미교실을 열고 있다. 꽃꽂이, 양말목 공예, 가죽 공예, 마크라메(서양식 매듭) 화분걸이 제작 등 각각 다른 재능을 가진 주민들이 영상을 올려 이웃들과 실시간으로 취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자치회가 참여 주민들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해 보니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사당2동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교육시간과 강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며 “듣고 싶은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와 내년 프로그램에 반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파구 가락1동에서는 주민자치회 사이트를 통해 라인댄스, 요가, 줌바 댄스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통기타, 종이접기 등 다양한 재능기부 강연이 이뤄지고 있다. 자치회에 따르면 일일 50명에 불과하던 사이트 방문자 수는 지난 2월 주민강연 영상이 공개되자 2주 만에 3300명 넘는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이웃끼리 재능 기부하며 코로나 일상서 활기 되찾아”

주민들의 비대면 재능 기부는 현대판 ‘품앗이’라는 평가다. 주민들끼리 재능기부 강연을 공유하기 때문에 큰 섭외 비용이 들지 않고 장소나 장비도 자치구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민자치회는 이런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숨겨진 ‘지역인재’를 발굴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락1동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코로나 시대 ‘언택트’(비대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재능기부 강연자는 코로나19로 무기력해진 일상의 활기를 되찾고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재능기부 강연에 대한 호응은 수강생만큼이나 강사들도 높은 편이다. 영어 관련 영상제작에 참여한 한 송파구 주민은 “코로나 기간 중 수업이 없어 많이 우울했었는데 영상을 통해 수강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감사했다”며 “처음 하는 촬영이라 어색했는데 수강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고 뿌듯해했다.

일부 자치구에서는 주민들이 쉽게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동구 행당1동 주민자치회는 지난 10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세 차례에 걸쳐 동영상 촬영과 편집 강의를 진행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