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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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뜻만 좇은 巨與, 일방폭주로 정치·법치 후퇴시켜” [2021신년특집-위기의 민주주의]

정치·사회·법학자 10명이 본 문재인정부

소수야당 무시·‘법대로’만 강조 협치 실종
“공수처법 등 쟁점법안 입법 독주
합법화된 ‘필리버스터’조차 무력화
표결로 야당의 ‘반대할 자유’ 박탈
검찰총장 징계 강행 하며 독립성 침해”

‘선출된 권력’ 내세워 스스로 정당화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로 둔갑시켜
‘우리 진영은 善, 다른 진영은 惡’
이분법적 사고로 지지층과만 소통
끝까지 상대 동의 구하는 노력해야”

‘거대 여당이 후퇴시킨 민주주의’

 

세계일보의 신년 인터뷰에 응한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법학자 10명은 문재인정부를 평가하면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으로 ‘민주주의 후퇴’를 꼽았다.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쟁점 법안들을 의석수로 밀어붙인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를 그 근거로 들었다. 

 

특히 ‘야당의 비토권 삭제’를 골자로 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처리 과정은 소수에 대한 설득과 협치 노력이 실종된 단적인 사례였다. 공정한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하는 국회의장이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중단 표결에 참가한 것도 민주주의 후퇴 사례로 지적됐다. 

 

여당이 야당의 ‘반대할 자유’를 박탈하고 검찰총장 징계를 밀어붙이며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태도 거론됐다.

 

◆“소수 야당 무시하는 거대 여당”…다수결 정당성 훼손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 교수는 “현 상황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현 정부에 대해 나오는 여러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면서 “공수처장 문제나 여러 입법 과정에서 과연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결정을 했느냐”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물론 야당이 발목을 잡고 180석의 유권자 선택을 받았다는 현실 논리도 있겠지만, 이에 불구하고 끝까지 상대방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은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수자의 의견도 존중될 때야 비로소 다수결이 정당성을 갖게 된다는 취지다.  

 

민주당이 21대 전반기 국회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포함해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독식한 것은 ‘거대 여당의 절제’가 필요했던 부분이란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라임, 옵티머스 등 역대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 경제범죄가 있음에도 이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듯이 보이고, 탈원전 등 현 정부와 관련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징계해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받아들였던 역대 정부가 임기 말에 보였던 자세와 비교가 된다”고 평가했다. 

◆“법대로 한다는 여권 발상 위험”…정치의 사법화 현상 심화

 

여권이 ‘법대로’만을 강조하며 이를 정당성의 근거로 주장할 경우 협상과 타협은 실종되며 이는 ‘정치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소추위원 대리인단 대표였던 황정근 변호사는 민주당의 ‘맞불 찬성 무제한토론’을 문제 사례로 들었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국정원법과 대북전단살포 금지법 필리버스터를 모두 표결로 강제 종료시켰다. 강제 종료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여당은 야당의 발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찬성 무제한 토론’까지 했다. 

 

황 변호사는 “국회법대로 한다고 뭐가 잘못됐냐고 하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필리버스터를 다수 여당이 한다는 것은 법조문에는 맞는다. 그러나 ‘무제한 토론이니까 우리도 할래’ 하면서 상대 당을 못하게 하는 건 도입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고 일침을 놨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안을 재가할 때도 “징계 제청이 오면 대통령은 재량 없이 그대로 재가하고 집행한다”며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여권의 이런 ‘법대로’ 행태에 정치가 실종됐고 법원과 검찰이 대신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심화됐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정치의 모든 게 사법에 의해 결정되는 사법민주주의 방식으로 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선출된 권력’, ‘국회 다수’ 내세우며 민주주의, 법치주의 파괴”

 

전문가들은 현 정부 인사들이 ‘선출된 권력’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대목을 지적했다. “국민에 의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는 점을 강조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지난 11월 ‘월성원전 1호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 및 검찰 수사를 문제 삼으며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가 공약을 지킨다는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의 원리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는 “이 정부는 선출된 권력이니 국회 다수니 하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계속 깨트리고 있다”며 “그건 포퓰리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도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화 세력 자처하는 86세대, 민주화 이해 부족”

 

현 정부가 지지층과의 소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언론 등 반대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민주당은 최근 ‘코로나19가 아니라 언론과 싸운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최고위에서 “야당과 일부 언론이 백신 정쟁화와 과도한 공포를 조성한다”고 하거나 특정 언론의 보도를 언급하며 “고의로 맞춤형 통계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혹세무민”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에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자유, 소수에 대한 존중”이라며 “현 정부에선 그런 게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민주화 세력’임을 강조하는 86세대들이 주류를 차지한 현 정부가 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운동권으로서의 86세대는 민주적이지 않았던 부분이 굉장히 많다. 거악이 있었던 당시엔 한정적으로 용인되고 정당화됐다”면서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심 교수는 “우리 진영은 선(善)이고 다른 진영은 악(惡)이라는 운동권적,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다른 진영의 의견은 들을 필요도 없고 그동안의 규범을 지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광화문 대통령’ 약속한 문 대통령, 반대 측 설득 노력 방기”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어카운터빌리티(설명책임)’를 강조했다. 장덕진 교수는 “(현 정부 임기) 전반기에는 대통령에 대한 권한집중을 분산할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면 후반기에는 대통령의 어카운터빌리티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대통령은 통치 행위나 정책에 대해 국민에게 소명하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추·윤 갈등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끝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법원이 윤 총장 복귀 결정을 한 이후에야 입장 표명을 했지만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김 교수는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여당은 아무리 힘들어도 설득을 하고 함께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한다”면서 “언론 탓, 야당 탓 하지 말고 공론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팀=장혜진·이현미·김민순·김주영·이동수·배민영·곽은산 기자 janghj@segye.com